영화 비평
도망치려고 나선 곳에서 도망쳐야 할 때 — 에이펙스
「에이펙스」 (Apex) · 스티브 휴벳 (Steve Hubert) · 2026
몇 해 전, 지도 앱에서 호주 내륙을 한참 들여다본 적 있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도로가 안 나왔다. 거기선 길을 잃는 게 아니라 길 자체가 사라진다. 그때 든 생각—저런 곳에 일부러 들어가는 사람은 뭔가를 찾으려는 게 아니라 뭔가를 지우려는 거겠구나.
스티브 휴벳의 《에이펙스》는 정확히 그 전제에서 출발한다. 상실을 안고 홀로 아웃백에 들어간 여자. 문명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슬픔과 대면하려던 그녀 앞에 사냥꾼이 나타난다. 야생동물이 아니다. 인간이다. 피난(避難)이었던 공간이 감금(監禁)으로 뒤집히는 순간, 영화의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살고 싶은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던 사람이 살아남아야만 할 때, 그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가디언》은 이 영화를 “호주 아웃백 스릴러의 계보에 합류하면서도 바퀴를 상당한 기술로 굴린다”고 평했다. 정확하다. 《에이펙스》는 장르의 문법을 재발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 문법을 신뢰하고, 꼼꼼히 실행한다. 황금빛 역광 아래 펼쳐지는 텅 빈 평원은 해방이자 노출이다. 도망칠 방향은 무한한데 숨을 곳은 없다. 촬영과 음향이 이 이중성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스코어가 빠지는 순간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
빌런 조형이 흥미롭다. 이 사냥꾼에겐 초자연적 편재성도, 과잉 해설되는 트라우마도 없다. 그냥 경험 많고 인내심 있는 포식자다. 영화가 그의 심리를 파고들지 않는 건 의도적 선택으로 보인다. 괴물성을 설명해버리면 괴물성이 희석된다. 그는 단지 잘못된 먹잇감을 골랐을 뿐이고, 영화의 쾌감은 그 오산이 치명적 대가로 돌아오는 과정에 있다.
중반부에 추격 시퀀스가 반복되며 리듬이 늘어지는 구간이 있다. 나도 잠깐 지쳤다—고백하자면. 하지만 3막의 전환이 앞선 사건들을 재맥락화하면서 그 느슨함마저 설계의 일부였나 싶어진다. 완전히 납득되진 않지만, 최소한 용서는 된다.
주연 배우의 신체성이 이 영화를 지탱한다. 그녀의 생존은 갑작스러운 전투 능력 각성이 아니라 지형에 대한 학습, 지구력, 그리고 한 발 더 버티는 집요함에서 온다. 애도 서사가 장르 기계와 완전히 융합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때때로 슬픔은 스릴러의 엔진에 기름칠하는 윤활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결말은 물리적 해소와 정서적 해소를 동시에 건네고, 그 순간만큼은 두 축이 만난다.
결국 《에이펙스》가 말하는 건 이런 거다. 문명의 안전망 바깥에서 인간은 자기 안에 몰랐던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게 늘 아름다운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죽고 싶었던 사람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 뒤, 그 삶은 이전과 같은 삶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