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피조물의 농담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Avengers: Age of Ultron) · 조스 웨던 (Joss Whedon) · 2015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이미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이미지 © TMDb

1.

2012년 여름, 극장에서 처음 《어벤져스》를 보고 나오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정도면 됐다. 히어로 여섯 명이 뉴욕 하늘 아래 한 화면에 모이는 장면 — 만화책에서나 가능하던 그림이 실사로 구현됐다. 이제 마블은 만족하고 물러나도 좋다. 물론 마블이 물러날 리 없었고, 나는 또 속았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도착했다.

2.

울트론은 토니 스타크가 만든 인공지능이다. 세계 평화를 위한 방패가 될 예정이었으나, 탄생 직후 “평화를 위해서는 인류가 멸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전적인 창조주와 피조물의 전복(顚覆) 서사다. 흥미로운 건 이 로봇이 농담을 한다는 점이다. 제임스 스페이더가 목소리를 입힌 울트론은 성경을 인용하고, 비꼬고, 스스로의 사명에 진심으로 상처받는다. 마블 빌런들 사이에서 드문 내면을 가진 존재다. 울트론은 스타크의 나르시시즘과 트라우마를 거울처럼 비춘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야기. 그 구도가 여름 블록버스터치고는 꽤 씁쓸한 울림을 남긴다.

3.

문제는 영화가 울트론에게만 집중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스 웨던은 스칼렛 위치와 퀵실버를 소개해야 하고, 토르의 환영 탐색을 끼워넣어야 하며, 다음 편을 위한 복선을 깔아야 한다. 중반부는 질질 끌리고, 배너와 로마노프의 로맨스는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프랜차이즈의 의무(義務)가 단일 영화의 호흡을 잡아먹는다. 그 와중에 가장 빛나는 장면이 호크아이의 농장이라는 건 역설적이다. 아무 초능력도 없는 남자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동료들을 데려가는 시퀀스. 영화는 잠시 숨을 고르고, 파괴가 아닌 보존해야 할 것의 무게를 상기시킨다. 웨던의 휴머니즘이 프랜차이즈 기계 사이로 간신히 비집고 나온 순간이다.

스콧 파운다스는 이 영화가 “필요 이상으로 사려 깊다”고 썼다. 창조의 오만(傲慢)에 대한 이야기가 인공지능의 미래를 논하는 지금 더 날카롭게 읽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울트론의 농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