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팬덤의 장례식, 혹은 성대한 작별 — 어벤져스: 엔드게임
「어벤져스: 엔드게임」 (Avengers: Endgame) · 안소니 루소, 조 루소 (Anthony Russo, Joe Russo) · 2019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만은 이 영화를 “관객의 10년치 투자에 대한 이자 지급”이라고 썼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하니까.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영화라기보다 정산서(精算書)다.
마블이 22편에 걸쳐 쌓아온 것들의 총결산. 나도 그 채권자 중 하나였고, 솔직히 말하면 원금도 까먹었다고 생각했다. 〈인피니티 워〉 이후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싶었던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루소 형제는 그 불가능한 숙제를 세 시간짜리 졸업 논문으로 제출했다.
첫 한 시간이 느리다. 일부러 느리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패배와 우울 속에 머무는 장면은 낯설다. 토르는 망가지고, 토니 스타크는 은퇴했으며, 캡틴 아메리카는 상담 그룹을 운영한다. 나는 여기서 살짝 당황했다. 이게 마블 맞나? 그런데 이 지루함이 나중에 돈이 된다. 추락을 먼저 보여줘야 부활이 의미가 있다는, 서사의 기본을 루소 형제는 알고 있었다.
중반부의 타임 하이스트는 MCU의 셀프 회고전이다. 과거 영화들을 다시 방문하는 구조. 팬서비스라고? 맞다. 그런데 이 팬서비스가 싸구려가 아니다. 10년 동안 같이 늙어온 관객에게 “기억나?” 하고 묻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2012년 뉴욕 전투를 다시 볼 때 웃음이 나왔고, 동시에 묘하게 쓸쓸했다.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영화가 시간여행을 한다기보다 관객이 시간여행을 한다.
시간여행의 논리적 허점? 당연히 있다. 영화도 안다. 캐릭터가 대놓고 “〈백 투 더 퓨처〉 규칙 아니야”라고 말한다. 면피(免被)인 동시에 선언이다. 논리보다 감정을 택하겠다는. 이 선택이 옳았는지는 개인의 판단에 달렸지만, 적어도 비겁한 선택은 아니었다.
토르의 처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트라우마의 신체화를 코미디로 풀어낸 건 재미있었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웃겨서 웃었는데 웃고 나서 찜찜한. 이 찜찜함을 영화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아마 후자일 것이다.
블랙 위도우의 결말도 논쟁적이다. 한 영국 평론가가 “정당한 비판을 촉발했다”고 썼는데 동의한다. 다만 나는 그 장면 자체보다 그 장면에 도달하는 과정의 밀도가 아쉬웠다. 호크아이와의 신(scene)은 좋았다. 좋았는데 짧았다.
마지막 전투는 압도적이다. 포털이 열리고 모든 영웅이 집결하는 순간, 나는 극장에서 탄성을 질렀다. 부끄러웠다. 조작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조작이 10년치 축적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나르시시스트 억만장자에서 자기희생적 영웅까지의 아크를 한 인물 안에서 완주한다.
영화는 길고,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지나치게 자기애적이다. 하지만 울었다. 나는 또 속았다. 기꺼이.
“아이 엠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첫 대사이자 마지막 대사다. 원점회귀인 동시에 완결. 이보다 나은 마침표를 상상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