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꿀벌의 소송, 우리의 일자리 — 꿀벌 대소동

「꿀벌 대소동」 (Bee Movie) · 사이먼 J. 스미스, 스티브 히크너 (Simon J. Smith, Steve Hickner) · 2008

꿀벌 대소동 (2008) 이미지
「꿀벌 대소동」 (2008) 이미지 © TMDb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육각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벌집이다. 노란 졸업가운을 입은 벌들이 일제히 사각모자를 공중으로 던진다. 환호 대신 윙윙거림. 카메라가 한 마리의 벌을 따라가자 거대한 꿀 공장이 펼쳐진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꿀이 쏟아지고, 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평생 한 가지 일만 한다. 신입 벌 배리 비 벤슨의 눈이 공허하게 빛난다. “이게 전부야?”

1 제리 사인필드가 직접 목소리를 넣고 각본까지 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은 직업 세계에 대한 풍자로 시작한다. 졸업 직후 평생 직장이 정해지는 벌집 사회. 배리는 ‘꿀 젓는 부서’와 ‘꿀 붓는 부서’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사인필드 특유의 관찰 유머가 여기서 빛난다. 영국 한 영국 평론가는 이 벌을 “일하기를 거부하는 만화판 바틀비”라 불렀다. 멜빌의 소설 속 필경사처럼 배리도 “차라리 안 하겠습니다”를 외치고 싶어 한다. 벌집 밖 세상으로 날아간 그는 뉴욕의 꽃집 주인 바네사(르네 젤위거)를 만나고, 인간들이 벌의 꿀을 ‘도둑질’해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배리는 인류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2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법정 장면은 개념으로는 재미있으나 실행(實行)에서 맥이 빠진다. 존 굿맨이 연기한 상대측 변호사가 고함을 지르고, 배리가 궤변으로 맞서지만 웃음은 드문드문 터진다. 풍자가 무엇을 겨냥하는지 흐릿해지는 것이다. 더 기묘한 것은 배리와 바네사의 관계다. 영화는 이 벌과 인간 사이에 분명한 로맨틱 긴장을 깔아두면서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끝내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바네사의 남자친구(패트릭 워버튼)가 질투하는 장면은 희극을 넘어 당혹(當惑)을 유발한다. 아이들 영화에서 이종간 연애라니. 영화는 그 불편함을 알면서도 농담으로 흘려버린다. 환경 메시지 역시 마지막에 급하게 꿰맨 듯 어색하다. 벌이 사라지면 꽃이 시든다는 생태적 진실이, 앞선 법정 코미디와 영 어울리지 않는다.

3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묵직하다. 졸업장 받자마자 한 직종에 배치되어 평생을 보내야 하는 세계. 배리가 도망친 벌집은 어딘가 낯익다. 한국의 대학 졸업생들도 ‘꿀 젓는 부서’와 ‘꿀 붓는 부서’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공채(公採) 시즌이 오면 젊은이들은 자기소개서에 꿀처럼 달콤한 말을 발라 넣고, 면접장에서 윙윙거린다. 배리처럼 “이게 전부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벌집 밖은 너무 춥다. 배리는 소송에서 이겼지만 벌집 경제가 무너지자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 꿀벌에게 자유란, 일할 권리를 되찾는 것이었다. 우리의 청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원하는 건 해방이 아니라, 그저 의미 있는 일자리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