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집착의 해부학, 혹은 감정 없는 열정에 관하여 — 데미지
「데미지」 (Damage) · 루이 말 (Louis Malle) · 1992
1.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필립 프렌치는 이 영화를 두고 “고전적 의미의 비극”이라 불렀다. 운명이 성격을 통해 작동하고, 파멸이 끔찍한 필연성과 함께 도래하는 그런 종류의 서사라는 뜻이다. 조세핀 하트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데이비드 헤어가 각색하고 루이 말이 연출한 1992년작 ‘데미지’는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 분류를 거부한다. 이 영화에는 스릴도 멜로드라마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냉정한 시선과, 그 시선이 포착하는 두 인간의 자기 파괴뿐이다.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하는 스티븐 플레밍은 영국 하원의원이다. 그는 수십 년간 성공과 명망을 쌓아온 남자다. 아내 잉그리드(미란다 리처드슨)와의 결혼 생활, 아들 마틴(루퍼트 그레이브스)과의 관계—모든 것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 아들이 데려온 약혼녀 안나(줄리엣 비노쉬)를 처음 만나는 순간까지는 그랬다. 두 사람의 시선이 엇갈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이후 벌어지는 모든 일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필연에 속한다.
2.
루이 말은 에로티시즘을 외과의사가 부검을 수행하듯 다룬다. 카메라는 두 인물의 육체적 관계를 노출하면서도 그 어떤 관음증적 쾌락도 제공하지 않는다. 섹스 장면들은 음란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말은 이 장면들을 서사의 필수 요소로 제시한다. 두 인물이 왜 서로에게 끌리는지 설명하는 대신, 그 끌림이 어떤 방식으로 두 사람을 잠식해가는지 보여준다. 대사보다 침묵이, 행동보다 시선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피터 비지우의 촬영은 런던을 절제된 색조로 그려낸다. 고급스러운 저택과 의회 건물, 박물관의 복도—이 공간들은 질식할 듯한 우아함으로 가득 차 있다. 억압(抑壓)과 분출(噴出)이라는 영화의 주제는 화면 전체에 스며든다.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기보다 잠재시킨다. 관객은 불안을 느끼지만, 그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다.
3.
제러미 아이언스는 자신의 특유한 자질—문명인의 외피 아래 숨겨진 욕망의 심연—을 이 역할에 정확히 쏟아붓는다. 스티븐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안다. 그러나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인간의 의지나 이성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끌림이 존재한다는 것. 줄리엣 비노쉬의 안나는 팜 파탈도 아니고 희생자도 아니다. 그녀의 동기는 끝까지 불투명하다. 그녀는 상처 입은 영혼이며, 자신의 존재 자체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 비노쉬는 설명을 거부하는 연기로 이 불가해함을 완성한다.
영화의 가장 강렬한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연급 배우가 아닌 미란다 리처드슨에게 주어진다. 출연 분량은 짧지만, 진실이 폭로되는 장면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붕괴의 순간은 관객의 마음을 관통한다. 이 장면은 1992년 영국 아카데미에서 그녀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겼다. 아들 마틴 역의 루퍼트 그레이브스 역시 배신당한 자의 무력감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
4.
‘데미지’는 관객에게 위안을 주지 않는다. 집착의 원인을 설명하지도, 그 결과를 도덕적으로 심판하지도 않는다. 루이 말은 단지 열정이 따뜻함 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며, 쾌락과 파멸이 구분되지 않는 영역이 인간 내면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제시할 뿐이다. 1990년대 초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편하다. 그것이 이 작품의 힘이다.
혹시 당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끌림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것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갔는가. ‘데미지’는 그 질문을 던진 후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은 관객 각자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후에도 오래 머문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