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그루는 왜 피곤해 보이나 — 슈퍼배드 4

「슈퍼배드 4」 (Despicable Me 4) · 크리스 르노 + 패트릭 델라지 (Chris Renaud + Patrick Delage) · 2024

슈퍼배드 4 (2024) 이미지
「슈퍼배드 4」 (2024) 이미지 © TMDb

몇 년 전 조카를 데리고 극장에 갔다. 《슈퍼배드 4》. 상영 시간 내내 조카는 깔깔댔고,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영화가 끝나자 조카가 물었다. “삼촌, 재밌었어?” 나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응, 미니언들 귀엽더라.”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전부도 아니었다.

Q: 이 프랜차이즈는 아직 살아 있는가?

A: 살아 있다. 단, 심폐소생이 아니라 인공호흡 상태다. 《버라이어티》의 피터 드브루지는 이 영화를 “조립라인에서 찍어낸 제품”이라 표현했다. 정확하다. 크리스 르노 감독이 1편 이후 돌아왔지만, 돌아온 건 감독뿐이다. 1편에 있던 것―개과천선(改過遷善)한 악당이 입양한 딸들과 쌓아가던 서툰 유대―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Q: 그럼 뭐가 남았나?

A: 미니언이 남았다. 미니언 굿즈가 남았다. 영화의 중심축은 두 개다. 하나는 빌런 학교 시절 원한을 품은 맥심 르 말(윌 페럴)의 복수극. 다른 하나는 갓 태어난 아들 ‘그루 주니어’가 아버지를 괴롭히는 육아 코미디. 문제는 이 두 줄기가 만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기획서 두 장을 스테이플러로 찍어 한 편으로 제출한 느낌이랄까. 여기에 ‘메가 미니언’―실험 혈청을 맞고 슈퍼히어로가 된 미니언 다섯―까지 끼어든다. 완구 매대(賣臺)에 진열할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Q: 그래서 이 영화는 재미없나?

A: 재미는 있다. 단, ‘재미’의 정의에 따라 다르다. 그루 주니어가 아버지의 안면에 퓌레를 발사하는 장면은 웃긴다. 미니언들이 벌 떼처럼 몰려다니며 교외 마을을 헤집는 시퀀스는 시각적으로 생동한다. 일루미네이션 특유의 밝은 색감과 유려한 동작은 여전히 건재하다. 하지만 웃음이 쌓여서 감동이 되는 순간은 끝내 오지 않는다. 마치 탄산음료를 연달아 마시는 기분이다. 톡 쏘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스티브 카렐은 여전히 그루의 과장된 억양으로 웃음을 뽑아내고, 크리스틴 위그의 루시는 여전히 재능에 비해 할 일이 없다. 윌 페럴은 성실하게 광기를 연기하지만, 맥심 르 말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바퀴벌레 코스튬 이상의 깊이를 갖지 못한다.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간 그루 가족이 교외의 평범한 동네에서 벌이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 코미디는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주민자치회 회의, 이웃집 바비큐 파티―이 괴짜 가족이 ‘정상’을 연기하는 모습은 풍자의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나 각본은 이 가능성을 채 탐색하기도 전에 익숙한 추격전으로 돌아간다.

Q: 왜 이렇게 됐나?

A: 이유는 간단하다. 《슈퍼배드》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브랜드다. 브랜드는 모험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기대치를 충족시킨다. 《가디언》의 벤저민 리는 썼다. “아이들은 즐거워할 것이고, 부모들은 핸드폰을 확인할 것이고, 모두 잊을 것이다.” 냉소적이지만 정확한 예언이다.

극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수많은 ‘4기작(期作)‘들도 비슷하지 않은가. 처음엔 진심이 있었고, 둘째엔 관성이 붙었고, 셋째엔 상품이 됐고, 넷째엔 그저 돌아간다. 정책도, 정치도, 조직도. 그루가 영화 중반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지?” 스크린 밖 어른들의 한숨과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