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지우고 싶은 것들 —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 미셸 공드리 (Michel Gondry) · 2004
기억의 무게
지난주 오래된 휴대전화 백업 파일을 정리하다 2016년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었다. 8년 전 나와 결별한 사람과의 대화였다. 새벽 세 시에 “잘 자”로 끝난 마지막 문장 뒤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대화창을 삭제하지 못하고 다시 폴더를 닫았다. 지워버리면 홀가분해질 것 같으면서도, 지우는 순간 그때의 내가 함께 사라질 것 같았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은 바로 그 망설임을 2시간짜리 악몽으로 펼쳐 보인다. 기억 삭제 전문 업체 ‘라쿠나’를 찾아간 조엘(짐 캐리)은 전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지워달라고 의뢰한다.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 잠든 그의 뇌 속에서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이 하나씩 붕괴해 간다. 문제는 조엘이 그 한복판에서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는 것. 지워지는 기억 속을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그는 외친다. 제발, 이건 남겨줘.
고무 얼굴의 반란
《뉴욕 타임스》의 A.O. 스콧은 이 영화를 두고 “감상에 빠지지도, 냉소로 후퇴하지도 않는 사랑 영화”라고 썼다. 나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짐 캐리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절반만 완성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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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는 ‘마스크’와 ‘에이스 벤츄라’로 90년대를 휩쓴 배우다. 할리우드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언제나 ‘얼굴 근육의 무정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는 정반대를 한다. 말을 아끼고, 시선을 피하고, 웃음조차 억누른다. 내향적인 남자 조엘에게서 ‘짐 캐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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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이 기억 속에서 어린 시절 부엌 식탁 밑에 숨는 장면이 있다. 다섯 살 아이의 공포와 마흔 살 남자의 체념이 동시에 얼굴에 떠오른다. 나는 그 표정에서 사람이 평생 단 한 번도 치유받지 못한 상처를 본다. 코미디언 특유의 과잉 에너지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쓸쓸함이 메운다. 방기(放棄)와 집착(執着)이 뒤섞인 그 미세한 표정 변화야말로, 이 영화가 SF를 빌려 말하려는 핵심을 정확히 표현한다.
손으로 만든 붕괴
공드리 감독은 뮤직비디오 출신답게 컴퓨터 그래픽보다 물리적 트릭을 선호한다. 조엘의 기억이 삭제될 때 화면 안에서 사람 얼굴이 공백으로 변하고, 방이 갑자기 작아지며, 책장이 통째로 사라진다. 이 모든 효과가 실제 세트와 조명 조작으로 촬영됐다. 디지털 시대에 이 수공예적 기법은 역설적으로 더 기이하게 다가온다.
- 기억이 무너지는 장면은 무섭기보다 슬프다. 공드리는 붕괴의 순간을 스펙터클이 아니라 상실로 연출한다. 클레멘타인과 처음 대화하던 서점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관객은 ‘멋지다’가 아니라 ‘아깝다’고 느낀다. 조엘이 놓치는 것이 곧 우리가 놓치는 것이 된다.
지울 수 없는 것의 가치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하는 클레멘타인은 자유분방한 여성 캐릭터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두려움이 많은 인물이다. 그녀는 “나를 구원해줄 개념으로 보지 마”라고 조엘에게 경고한다. 자기 안의 결핍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숨기지 못하는 사람. 윈슬렛은 클레멘타인의 충동성 이면에 자기혐오를 깔아둔다.
- 영화의 마지막,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기억이 지워진 상태에서 다시 만난다. 서로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끌린다. 그리고 예전에 서로를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괜찮아(Okay).” 상대도 대답한다. “괜찮아(Okay).”
이 대사는 화해가 아니다. 각오다. 우리는 또 싸울 것이고, 또 상처받을 것이며, 또 후회할 것이다. 그래도 다시 시작하겠다는 선언. 고통을 지워버리면 사랑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이 두 사람은 몸으로 증명한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사랑은 미래의 고통에 대한 보험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내기’다.
남은 질문
나는 결국 그 카카오톡 대화창을 지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읽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우리 시대는 기억을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 SNS는 “그날의 추억”을 매일 띄워주고, 알고리즘은 과거 사진을 재가공해 현재로 밀어 넣는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불리한 기억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지워버리고, 기업은 사과문을 발표한 뒤 포털 검색에서 기사를 밀어낸다. 기억 삭제는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이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에게 ‘라쿠나’가 있다면, 무엇을 지우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지운 뒤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인가.
—지우지 못한 자의 변명이라면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