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세 청부업자의 의치(義齒) — 패스트 찰리
「패스트 찰리」 (Fast Charlie) · 필립 노이스 (Phillip Noyce) · 2026
2023년 북미 박스오피스 10위권 중 8편이 슈퍼히어로물 혹은 기존 프랜차이즈의 속편이었다. 중간 예산의 성인 범죄 스릴러는 멸종 위기종(種)이다. 필립 노이스 감독의 ‘패스트 찰리’는 그래서 반갑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직한 장르영화, 익숙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오락물. 《인디와이어》는 이 영화를 “사라져가는 종(種)“이라 표현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 파괴와 복원 사이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하는 찰리 스위프트는 청부살인업자다. 동시에 의치(義齒) 기공사이기도 하다. 총알로 부순 것을 인공 이빨로 재건(再建)한다니, 기묘한 직업적 대구(對句)다. 70세의 브로스넌은 본드 시절의 광택 대신 주름진 품위를 장착했고, 모레나 바카린과의 로맨스는 나이에 걸맞은 속도로 전개된다. 할리우드가 오래 잊고 있던 풍경이다.
■ 마지막 출연
제임스 칸이 범죄조직 보스 스탠 역으로 등장한다. 그의 유작(遺作) 중 하나다. 그가 화면에 머무는 시간은 짧지만, 관객은 의도치 않은 무게를 느낀다. 배우의 죽음이 캐릭터에 덧입혀지는 순간. 영화는 이를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시간이 의미를 부여했다.
■ 중간의 미덕
이 영화는 장르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악당은 충분히 위협적이지 못하고, 반전은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과잉(過剩)도, 허세(虛勢)도 없다. 노이스 감독은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브로스넌은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는 배우의 여유를 보여준다.
극단(極端)만 살아남는 시대에 중간이라는 자리는 위태롭다. 블록버스터 아니면 저예산 독립영화. 우리 사회도 비슷하지 않은가. 가운데가 사라지고 양 끝만 고함을 지르는 세상. ‘패스트 찰리’는 묻는다. 중간쯤에서 제 할 일을 하는 삶은, 정녕 멸종해야 마땅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