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지난주 오래된 DVD 박스를 정리하다가 —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 데이빗 예이츠 (David Yates) · 2009
지난주 집 구석에 쌓인 DVD 박스를 정리하다가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케이스를 발견했다. 디스크 표면에는 잔기스가 여럿 나 있었다. 그만큼 자주 돌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묘한 점이 있었다. 재생 횟수에 비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기억은 흐릿했다. 줄거리보다 분위기만 남아 있었다. 어두웠고, 아름다웠고, 슬펐다.
이 영화는 시리즈의 전환점이 맞는가?
답: 그렇다. 그러나 그 전환이 모든 관객에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전작 〈불사조 기사단〉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시리즈를 연출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철저한 분위기의 지배였다. 새 촬영감독 브루노 델보넬은 호그와트를 마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처럼 촬영했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흐린 빛, 얼굴 절반을 가리는 그림자, 탈색된 색조. 《버라이어티》의 토드 매카시는 이 영화를 “고딕 로맨스와 판타지 모험의 결합”이라 평했는데, 적확한 지적이다. 아름다움과 불길함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한다.
그렇다면 십대 로맨스 서브플롯은 실수였는가?
답: 아니다. 오히려 계산된 선택이다.
론과 라벤더 브라운의 촌극, 헤르미온느의 질투, 해리와 지니의 서먹한 입맞춤. 초반 일부 관객은 이 장면들을 지루하다 평했다. 그러나 예이츠와 각본가 스티브 클로브스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사소한 사랑의 혼란이야말로 다가올 전쟁에서 잃어버릴 것들의 목록이다. 청춘의 시시함이 곧 생존의 동력이 된다는 역설. 영화는 그 明暗(명암)을 보여준다.
톰 펠튼의 드레이코 말포이에 대하여
시리즈 내내 악역으로 소비되던 드레이코가 이 영화에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필요의 방에서 홀로 서성이는 드레이코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고독이 번갈아 지나간다. 펠튼은 대사 없이도 연기한다. 눈빛으로.
동굴 시퀀스는 기대만큼인가?
해리와 덤블도어가 호크룩스를 찾아 동굴로 들어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물 위에 떠오르는 인페리우스들, 덤블도어의 고통, 해리의 공포. 예이츠는 긴장을 천천히 조여 온다. 마이클 갬본은 전작들에서 때때로 리처드 해리스의 그림자에 가려졌지만, 이 시퀀스에서 자신만의 덤블도어를 완성한다. 비밀에 짓눌린 노인, 죽음을 준비하는 스승.
그리고 결말에 대하여
클라이맥스의 비극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예이츠는 히스테리를 거부한다. 침묵과 절제가 슬픔을 증폭시킨다. 니콜라스 후퍼의 음악이 그 위를 덮는다. 장례식은 없어도, 애도는 있다.
한 영국 평론가는 이 영화를 “어린 시절에 대한 만가(輓歌)“라 불렀다. 캐릭터들만의 어린 시절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자란 세대의 어린 시절이기도 하다. 덤블도어의 대사가 떠오른다. “죽음과 어둠을 마주할 때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지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 미지를 직시하라고 말한다. 두려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