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괴물 —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 데이비드 예이츠 (David Yates) · 2007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2007) 이미지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2007) 이미지 © TMDb

①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자문해본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괴물? 창문을 두드리는 유령? 아니었다. 진짜 무서웠던 건 웃으면서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는 어른들이었다. 《버라이어티》의 토드 매카시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두고 “제도적 악의가 상냥함으로 포장될 때 관객이 인식하는 공포”라고 썼다. 정확한 진단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악당은 볼드모트가 아니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고 새끼고양이 접시를 수집하는 돌로레스 엄브릿지다.

②이멜다 스턴튼이 창조해낸 엄브릿지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소름 끼치는 인물이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마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교과서를 읽게 한다. 진실을 말하는 자에겐 자기 살을 파내며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를 새기게 한다. 스턴튼의 연기가 불편한 까닭은 그녀가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이런 인간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규정을 앞세우며 인간을 짓밟는 자, 선의를 가장하며 통제하는 자, 달콤한 목소리로 협박하는 자. 그녀 앞에서 볼드모트의 직접적인 살육은 차라리 솔직해 보인다.

③TV 드라마 연출자 데이비드 예이츠의 시리즈 합류는 예상 밖의 선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탁월했다. 그는 870쪽짜리 원작 소설을 시리즈 최단 러닝타임인 138분으로 압축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마법부의 호그와트 장악, 예언자일보의 선전 도구화, 교육기관의 통제 수단 전락. 예이츠는 판타지 모험 대신 정치 알레고리를 선택했다. 회색빛으로 탈색된 화면 속에서 호그와트는 마법학교가 아니라 감옥처럼 보인다. 해리의 고립과 분노를 담아내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연기도 이전과 다르다. 아이가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이 거기 있다. 앨런 릭먼과의 오클러먼시 수업 장면에선 두 배우 사이에 적대와 상처가 전류처럼 흐른다.

④위기의 징후가 분명한데도 정부가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외치는 상황.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자가 정신병자로 낙인찍히는 상황. 언론이 권력의 확성기로 전락하는 상황. 2007년 영화가 2024년 한국에서 기시감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판타지의 실패가 아니라 현실의 실패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분홍 카디건이 필요할지 모른다. 괴물을 알아보려면 먼저 그 복장을 기억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