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언덕 위의 방과 언덕 아래의 방 —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天国と地獄) ·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 1963
《영국의 한 영화지》의 톰 밀른은 이 영화를 두고 “일본 사회의 수직적 계층화를 체계적으로 해부한다”고 썼다. 정확한 진단이다. 다만 ‘해부’라는 단어가 품은 냉정함으로는 이 영화가 관객의 가슴팍에 들이미는 날것의 불쾌함을 설명하기 어렵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1963)은 에드 맥베인의 미국 범죄소설 『킹스 랜섬』을 원작으로 한다. 유괴범이 부잣집 아들 대신 운전기사의 아들을 실수로 납치한다. 돈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 줄거리만 보면 B급 스릴러의 설정이다. 구로사와는 이 저질 재료로 143분짜리 도덕 시험지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두 개의 덩어리로 쪼개진다. 전반부는 거의 전부가 언덕 위 저택 안에서 벌어진다. 신발 제조업자 곤도(미후네 도시로)의 거실은 넓지만 숨이 막힌다. 구로사와는 와이드스크린을 감옥처럼 쓴다. 인물들은 프레임의 양 끝에 떨어져 앉고, 그 사이의 공백이 계급과 입장 차이를 시각화한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공간의 정치학’이라는 말이 왜 진부해졌는지 이해했다. 구로사와가 1963년에 이미 그 문법을 완성해버렸기 때문이다.
후반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경찰이 요코하마의 뒷골목을 뒤지고, 마약굴을 기웃거리고, 용의자를 추적한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수사 절차물(搜査節次物)이다. 구로사와는 여기서도 멈추지 않는다. 유일하게 컬러로 삽입되는 분홍색 연기—시신을 태우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는 흑백 화면을 찢고 들어와 “네가 보고 있는 게 지옥이다”라고 선언한다.
천(天)과 지(地). 부(富)와 빈(貧). 상(上)과 하(下). 제목이 품은 이항대립(二項對立)은 단순하다. 그러나 영화는 그 단순함을 가지고 논다. 언덕 위 에어컨이 돌아가는 저택에서 언덕 아래 찜통 같은 골방을 내려다보는 구도가 반복된다. 범인은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다. 그의 범죄 동기는 돈이 아니라 분노다. 매일 밤 언덕 위로 올려다본 불빛이 그를 미치게 했다.
마지막 대면 장면에서 유리창에 두 남자의 얼굴이 겹쳐 비친다. 곤도와 범인. 승자와 패자. 그 순간 둘의 표정이 똑같다는 걸 알아챌 때, 이 영화가 단순한 ‘권선징악 스릴러’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정된다.
2024년, 대한민국의 자산 상위 10%가 전체 부의 58.5%를 소유한다. 누군가의 천국은 누군가의 지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구로사와는 61년 전에 그 지형도를 그려놨다. 우리는 아직 그 지도 위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