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평화의 민영화 — 아이언맨 2
「아이언맨 2」 (Iron Man 2) · 존 파브로 (Jon Favreau)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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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버라이어티》의 저스틴 창은 〈아이언맨 2〉 리뷰에서 “프랜차이즈 구축 모델의 내재적 한계를 드러낸다”고 썼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실험으로 불리는 지금, 그 문장은 예언처럼 읽힌다. 혹은 저주처럼.
토니 스타크는 정부 청문회에서 슈트 양도를 거부하며 한마디를 던진다. “나는 세계 평화를 민영화했습니다.” 민간 기업가가 군사력을 독점하는 상황. 영화는 이를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에 대한 질문으로 포장한다.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가, 개인이 소유해도 되는가. 2010년의 그 물음은 2024년에도 살아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 전장의 통신망을 좌우할 때,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이 국방부 클라우드 계약을 따낼 때, 우리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그림자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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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브로의 연출은 기술적으로 안정되었고, 모나코 그랑프리 시퀀스는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보기 드문 물리적 타격감을 구현한다. 미키 루크의 이반 반코가 전기 채찍으로 경주차를 갈라버리는 장면은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의 기술력이 낭비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반코는 복수극의 잠재력을 품은 캐릭터였으나 러닝타임 안에서 질식한다. 그의 서사는 닉 퓨리의 등장, 블랙 위도우의 소개, 어벤져스를 향한 이정표들 사이에서 조각난다. 한 영국 평론가는 이를 “개별 서사와 기업 시너지 사이의 긴장”이라 불렀다. 정확한 진단이다. 이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나타샤 로마노프는 캐릭터가 아니라 예고편에 가깝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이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는다. 팔라듐 중독으로 죽어가면서도 농담을 멈추지 않는 스타크. 그 허세 아래 숨긴 취약함이 배우의 눈빛에서 새어 나온다. 특히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의 유산 영상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다우니 주니어는 코믹북 캐릭터에 희귀한 깊이를 부여한다. 샘 록웰의 저스틴 해머가 훌륭한 코미디를 제공하지만, 영화가 붕괴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다우니 주니어의 중력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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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은 이후 이 방식을 더 밀어붙였고, 결국 성공했다. 〈아이언맨 2〉의 창작적 타협은 〈어벤져스〉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개별 작품의 완결성은 희생되었다. 공유 세계관은 이익이자 비용이다. 모든 영화가 다음 영화의 광고가 되는 순간, 우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출시 일정표를 본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던졌던 정치적 질문이 결국 답 없이 휘발된다는 점이다. 스타크는 슈트를 넘기지 않는다. 정부는 무력하고, 라이벌 기업은 무능하며, 복수자는 패배한다. 힘은 천재 개인에게 남는다. 이것이 판타지인지 경고인지, 영화는 결정하지 않는다. 아마 결정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에는 모호함이 유리하니까.
스타크의 오만한 선언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세계 평화를 민영화했습니다.” 그 대사는 우습지만, 웃음 뒤에 불안이 있다. 평화를 민영화한 세계에서, 책임은 누가 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