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털끝 하나에 담긴 3년, 공포 산업이 웃음으로 뒤집힐 때 — 몬스터 주식회사
「몬스터 주식회사」 (Monsters, Inc.) · 피트 닥터 (Pete Docter) · 2001
픽사 스튜디오가 「몬스터 주식회사」 개발에 투입한 시간은 5년이다. 그중 설리의 털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3년이 걸렸다. 영화 잡지 「버라이어티」의 토드 매카시는 이 기술적 성취를 두고 “이전까지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꿈만 꿀 수 있었던 촉각적 실재감”이라 표현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과잉 투자다. 그러나 관객은 그 3년을 ‘느낀다’. 설리가 꼬마 부를 안아올릴 때, 푸른 털 사이로 작은 손이 파묻히는 순간 관객의 손끝도 함께 닿는다.
비명의 경제학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정은 간단하다. 괴물들이 아이들을 겁주러 다닌다. 단, 이 공포는 취미가 아니다. 직업이다. 아이들의 비명은 몬스트로폴리스 전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이고, 공장 노동자들은 출퇴근 카드를 찍으며 ‘공포 생산량’을 채운다. 회사 로비에는 ‘이달의 겁주기왕’ 사진이 걸리고, 중간 관리자들은 생산 실적에 일희일비한다. 영화는 이 풍경을 철저히 사실적으로 그린다. 할당량에 쫓기는 노동자, 실적에 목매는 팀장, 에너지 위기를 우려하는 언론. 미국 중서부의 제조업 도시가 괴물 세계로 옮겨진 듯한 착각이 든다.
화면 가득 익살스러운 괴물들이 난무하지만, 카메라는 끊임없이 그 풍경 뒤에 숨은 구조를 비춘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공포로 돈을 버는 기업이다. 주주 이익을 위해 아이들의 두려움을 착취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효율적인’ 공포인지를 고민하며 공정을 개선한다. 피트 닥터 감독은 이 설정을 단 한 번도 유머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공포의 산업화(産業化)라는 우의(寓意)는 텍스트 전면에 놓여 있되, 교훈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문이 열리는 곳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수만 개의 문이 공중에 떠다니는 거대한 창고다. 설리와 마이크가 악당 랜달을 피해 컨베이어 시스템 위를 질주하고, 문은 아이들의 방으로, 전 세계로 연결된다. 추격전이 곧 공간 여행이 된다. 현기증 나는 시퀀스인데도 카메라 움직임에는 균형이 있다.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출신인 닥터 감독은 어디서 속도를 낼 것인지, 어디서 멈출 것인지를 정확히 안다.
그러나 추격전보다 오래 남는 장면은 따로 있다. 설리가 잠든 부를 내려다보는 순간, 또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부의 문이 복원되는 순간. 이 영화에서 존 굿맨의 목소리는 관록 있는 중년 배우의 따뜻함과 예기치 못한 부성 사이를 오간다. 빌리 크리스털의 마이크가 영화의 코믹 에너지를 전담하고, 굿맨의 설리는 감정의 무게를 전담한다. 두 성우의 호흡은 아무리 황당한 설정에서도 관객을 붙들어 둔다.
웃음의 역설
「몬스터 주식회사」의 반전은 비명 에너지보다 웃음 에너지가 열 배 강력하다는 발견이다. 회사는 사업 모델을 전환하고, 괴물들은 겁주기 대신 웃기기 담당자가 된다. 이 결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앞서 쌓인 모든 우화를 한 문장으로 뒤집는다. 두려움을 착취하는 시스템이 기쁨을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교체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스크린 바깥으로 번진다. 영화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어른에게 하는 말이 같은 문장이면서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뉴욕타임스」의 엘비스 미첼이 이 영화를 두고 “완전히 유쾌하면서도 기업 미국에 대한 교활한 논평”이라고 쓴 것은 과장이 아니다. 괴물 세계를 20세기 중반 미국 산업도시처럼 디자인한 미술팀의 선택, 에너지 위기를 화석연료 의존과 병치시킨 각본의 의도.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면서 동시에 노동과 자본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다만 이 풍자가 완전한 것인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나는 때로 이 영화가 너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공포 에너지에서 웃음 에너지로 전환한다고 해서 착취의 구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웃음도 결국 ‘자원’이 되는 것 아닌가. 영화는 여기까지 질문하지는 않는다.
결국 기술 위에 이야기가 선다
픽사의 성공 공식은 간명하다. 기술이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게 한다. 설리의 수백만 개 털이 개별적으로 움직여도, 그 털이 부의 작은 손과 닿을 때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온기다. 「영국의 한 영화지」의 김 뉴먼이 지적했듯, 픽사는 경쟁사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기술 혁신 자체는 의미가 없다. 들려줄 가치가 있는 이야기와 돌볼 가치가 있는 캐릭터가 있을 때, 기술은 비로소 봉사한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실패한 모범생의 초상이기도 하다. 설리는 최고의 겁주기왕이었다. 그러나 그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인간 아이를 만나고, 시스템이 규정한 가치들에 의문을 품게 된다. 공포로 살아온 자가 웃음으로 변모할 때, 그의 직업적 성공은 무효가 된다. 정상을 포기하는 것. 실패를 통해 더 나은 방식을 찾는 것. 이 역설이야말로 애니메이션 바깥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