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도미닉 산타마리아 감독께 — My Fault: London

「My Fault: London」 (My Fault: London) · 도미닉 산타마리아 (Dominic Santamaria) · 2025

My Fault: London (2025) 이미지
「My Fault: London」 (2025) 이미지 © TMDb

이 영화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가디언》의 벤자민 리는 ‘My Fault: London’을 두고 “컴포트 푸드 시네마”라 불렀습니다. 정확한 진단이에요. 당신의 영화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맥앤치즈와 같습니다. 재료는 상급이고, 조리법은 정밀하며, 맛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스페인판 ‘Culpa Mía’를 런던으로 옮기면서 당신이 바꾼 것은 무엇입니까. 상그리아가 애프터눈 티로, 지중해 해변이 서펜타인 호수 위의 보트로 교체되었을 뿐입니다. 켄싱턴 타운하우스 창 너머로 비 내리는 런던을 보여주는 쇼트는 분명 아름답습니다. 샤드 빌딩을 배경으로 한 옥상 고백 장면도, 햄스테드 히스에서의 의미심장한 산책도.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엽서의 것이지 영화의 것이 아닙니다.

에린 레인과 매튜 브룸. 두 배우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합니다. 레인은 미국에서 건너와 영국 상류층 세계에 던져진 ‘노아’의 불안과 욕망을 눈빛으로 전달하고, 브룸은 상처 입은 부잣집 도련님 ‘닉’의 템플릿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채워 넣습니다. 둘 사이의 케미스트리에는 분명 열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님, 열기와 긴장은 다른 것이에요. 불꽃은 타오르되 화상의 위험은 없습니다. 의붓남매 간의 금기라는 설정이 스릴을 약속하지만, 영화는 그 약속을 끝내 현금화하지 않습니다. 위반의 전율을 암시하면서도 진정한 함의와 대면하기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 이 프랜차이즈가 수년간 유지해온 절묘한 줄타기입니다.

《버라이어티》의 제시카 키앙은 이를 “수술적 정밀함”이라 표현했습니다. 북톡(BookTok)이 만들어낸 欲望(욕망)의 문법을 당신은 알고리즘적 정밀함으로 充足(충족)시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그러나 수술은 치료를 위한 것이고, 이 영화가 치료하는 것은 오직 시청자의 지루함뿐입니다.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소파에 누워 이런 류의 작품에 두 시간을 헌납한 적이 있으니까요. 부가 도덕적 질문 없이 배경으로 존재하고, 갈등이 러닝타임 안에 해결되며, 금지된 사랑이 금지의 무게 없이 성취되는 세계. 그 세계는 때로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당신의 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제공하지만, 관객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위안은 주되 질문은 없습니다.

감독님, 에린 레인이 런던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2초 남짓한 그 쇼트에서 나는 당신이 정말 만들고 싶었던 영화의 그림자를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그 창문을 열어주시길.

요즘 서점에도, OTT 플랫폼에도 ‘힐링’을 내건 것들이 범람합니다. 우리는 위로받기를 원하고, 시장은 그 욕망을 정확히 충족시킵니다. 그러나 위로만 소비하는 사회는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회가 됩니다. 질문 없는 위안은 공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