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고통의 해부학 — 님포매니악 볼륨 2

「님포매니악 볼륨 2」 (Nymphomaniac: Vol. II) ·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 2013

님포매니악 볼륨 2 (2013) 이미지
「님포매니악 볼륨 2」 (2013) 이미지 © TMDb

어두운 방.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다. 그녀의 등에는 채찍 자국이 선명하다. 붉은 선들이 교차하며 격자를 이룬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살갗 위에 지도를 그려놓은 것 같다. 카메라는 물러서지 않는다. 줌인하지도, 줌아웃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본다. 의사가 수술대 위 환부를 들여다보듯,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샬롯 갱스부르의 상처 입은 육체를 응시한다.

[1] ‘님포매니악 볼륨 2’는 1편이 남겨둔 빚을 갚으러 온 추심원 같은 영화다. 1편에서 폰 트리에가 베풀었던 지적 유희—조의 고백에 셀리그만(스텔란 스카스가드)이 낚시 기법과 피보나치 수열을 끼워 맞추던 아이러니—는 2편에 이르러 급격히 증발한다. 남는 것은 중독(中毒)과 파멸(破滅), 그 사이를 왕복하는 한 여자의 궤적뿐이다. 영국 한 영국 평론가가 “관객에 대한 고의적 공격”이라 표현했듯, 이 영화는 쾌락(快樂)을 약속하는 척하다가 끝내 고통만을 배달한다.

[2] 갱스부르는 서른 줄에 접어든 조를 연기한다. 1편에서 스테이시 마틴이 맡았던 청춘의 시간은 끝났다. 남편 제롬(샤이아 러버프)과의 결혼은 파탄났고, 아이는 그녀에게 죄책감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감각이 무뎌졌다. 자극의 역치(閾値)가 올라간 것이다. 더 강한 것, 더 날카로운 것, 더 위험한 것. 조는 직업적 사디스트 K(제이미 도넌)를 찾아간다. 방 안에는 채찍과 밧줄이 정돈되어 있다. 폰 트리에는 이 시퀀스를 수술 다큐멘터리처럼 찍었다. 에로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해부학만이 있을 뿐이다.

중독은 원래 그런 것이다. 시작은 쾌락이지만 끝은 생존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맛 때문에 마시지 않듯, 조도 더 이상 쾌락 때문에 섹스하지 않는다.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할 뿐이다. 폰 트리에가 이 영화에서 정말로 말하려는 것은 성(性)이 아니다. 강박의 메커니즘, 자기파괴의 문법이다.

[3] 《버라이어티》의 가이 로지는 폰 트리에가 “보통 폭력이나 죽음에나 부여하는 진지함으로 성을 다루었다”고 평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할리우드는 사람의 머리를 총으로 쏘는 장면은 12세 관람가로 틀지만, 사람의 알몸이 나오면 성인 등급을 매긴다. 폭력에는 관대하고 성에는 가혹한 이 이상한 이중 잣대를 폰 트리에는 정면으로 조롱한다. 그는 성을 폭력처럼, 폭력을 성처럼 찍었다. 불편함의 원천이 여기 있다.

액자 구조도 2편에선 삐걱거린다. 셀리그만의 학구적 비유들—조의 경험을 순교와 연결 짓는 대목—은 1편에선 위트였지만 2편에선 억지로 느껴진다. 철학을 가장한 시간 벌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조적 결함마저 폰 트리에의 계산일지도 모른다. 지식인의 ‘이해’가 결국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셀리그만을 무력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다.

[4] 결말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아끼겠다. 다만 이것만은 말해둔다. 폰 트리에는 휴머니즘을 믿지 않는다. 동정과 연민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달콤한 서사를 그는 증오한다. ‘님포매니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셀리그만은 4시간 넘게 조의 이야기를 들었다. 판단 없이, 비난 없이. 그래서 그가 조를 이해했는가? 마지막 장면은 그 답을 준다. 씁쓸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답을.

우리 사회에도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약자의 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 그 연민이 얼마나 진짜인지를 폰 트리에는 의심하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냉소(冷笑)를 부추기는 것인지, 아니면 더 정직한 연대를 요구하는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영화를 보고 나왔다. 불쾌했다. 불편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폰 트리에가 원한 것이 아마 이것일 터다. 관객을 편안하게 보내지 않는 것. 그의 영화는 껌이 아니다. 씹고 뱉을 수 없다. 삼켜야 한다. 소화가 안 되더라도.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할 수 있을까. 글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불편함을 자처하는 이상한 부류가 있다. 편안한 거짓보다 불편한 진실을 택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라면 한번 보시라. 단, 식사 직후는 피하시길. 나처럼 속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