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직장의 로맨스: 소비에트가 낳은 가장 유쾌한 항복

「직장의 로맨스」 (Office Romance) · 엘다르 랴자노프 (Eldar Ryazanov) · 2026

직장의 로맨스 (2026) 이미지
「직장의 로맨스」 (2026) 이미지 ©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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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통계국 사무실. 서류 더미 사이로 구부정한 남자가 걸어간다. 아나톨리 노보셀체프(안드레이 먀흐코프)는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미 체득한 중년이다. 카메라가 그를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소비에트 관료제의 미로를 함께 통과한다. 복도 끝, 문이 열리고 류드밀라 칼루기나(알리사 프레인들리흐)가 등장한다. 냉담한 시선, 완벽한 정장. 부하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미 항복했다. 1977년 소련 영화에 이런 게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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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다르 랴자노프는 ‘소비에트의 빌리 와일더’라 불렸다고 한다. 나는 보통 이런 수식어를 의심한다. 어느 나라의 누구누구라는 표현은 대개 원조의 희석(稀釋)을 뜻하니까. 그런데 《직장의 로맨스》를 보고 나니 이 별명이 모욕이 아니라 정확한 좌표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승진을 위해 상사에게 구애를 시작하는 남자. 자칫하면 혐오스러운 시니시즘으로 굴러떨어질 설정이다. 랴자노프는 이 위험한 전제를 진심 어린 로맨스로 착지시킨다. 그것도 양쪽 인물 모두에게 존엄을 허락하면서. 또 속았다. 로맨틱 코미디는 설정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걸 왜 자꾸 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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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 프레인들리흐의 칼루기나는 단순한 ‘얼음 여왕’ 원형을 넘어선다. 커리어를 위해 사적 행복을 유예한 여성, 그 선택의 무게가 표정 하나하나에 배어 있다. 그녀의 변화는 굴복이 아니라 확장이다. 영화는 ‘차가운 여자도 사랑 앞에선 녹는다’는 구태의연한 결론으로 미끄러질 수 있었다. 프레인들리흐가 그걸 막는다. 먀흐코프의 노보셀체프 역시 마찬가지다. 겉보기엔 한심하지만 내면에 품위를 숨긴 사람. 두 배우는 서로를 향해 걸어가면서 동시에 각자의 방향으로 성장한다. 사무실은 그 여정의 무대이자 소비에트 일상의 축소판이다. 잡담, 눈치, 위계. 랴자노프는 체제를 정면으로 겨냥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의 인간들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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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소련 영화라면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나 타르코프스키의 명상만 떠올린다면, 이 작품은 좋은 반례가 될 것이다. 《직장의 로맨스》는 어떤 이념적 교훈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외로운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는 과정을 유머와 따뜻함으로 그린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왜 이 영화를 이제야 봤는지 스스로 묻는다. 아마 당신도 비슷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한번 속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