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죽은 장르에서 걸어 나온 것들 — 라디컬
「라디컬」 (Radical) · 크리스토퍼 자라 (Christopher Zalla)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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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주는 교사’ 영화는 이미 끝났다. 《죽은 시인의 사회》 이후 할리우드가 양산한 이 장르의 공식은 너무 명확해서 더 이상 속을 여지가 없다. 비범한 교사, 버려진 학생들, 체제의 저항, 감동적 승리. 나는 이 공식이 나올 때마다 경계했고, 《라디컬》의 예고편을 보며 또 속겠구나 생각했다.
속았다. 다만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크리스토퍼 자라의 《라디컬》은 2013년 《와이어드》에 실린 조슈아 데이비스의 기사에서 출발한다. 멕시코 국경도시 마타모로스의 6학년 교사 세르히오 후아레스 코레아가 암기 중심 교육을 버리고 학생 주도 탐구 방식을 도입했을 때 벌어진 일. 팔로마라는 소녀가 전국 수학 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았다는, 그 자체로는 뻔한 서사다.
문제는 이 영화가 뻔함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피 대신 다른 무언가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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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엘리히는 이 영화가 “첫 프레임부터 감정 조작을 예고한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같은 글에서 “작은 승리 하나하나가 서사적 필연이 아닌 진짜 성취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이 양면성이 《라디컬》의 정체다.
에우헤니오 데르베스는 멕시코에서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배우다. 그가 세르히오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영화의 톤을 완전히 오해했다. 데르베스는 여기서 웃기지 않는다. 그는 지쳐 있고, 때로 무기력하며, 결정적 순간에도 영웅적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표현하는 것보다 억제하는 것이 더 많은 연기다. 나는 그런 연기에 쉽게 넘어간다.
팔로마를 연기한 제니퍼 트레호는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아이다. 그녀가 수학 문제를 풀며 보여주는 표정—발견의 흥분과 가족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은 성인 배우들도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라 감독이 교실 장면에서 핸드헬드 카메라로 잡아낸 혼돈과 에너지는 진짜 수업을 참관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3막에서 멍해졌다. 대회 시퀀스는 필연적이면서도 급하게 느껴지고, 학생들의 가정 상황은 해결이라기보다 절단에 가깝게 처리된다. 음악은 배우들이 이미 충분히 전달한 감정 위에 또 올라탄다. 이건 장르의 저주다. 《라디컬》조차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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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타모로스라는 장소가 이 영화를 구한다.
텍사스 브라운스빌과 국경을 맞댄 이 도시에서 교육은 생존과 경쟁해야 한다. 학생들이 카르텔에 잃은 가족을 이야기하고, 마약 경제의 수학을 계산하는 장면들은 빈곤 관광이 아니다. 왜 기존의 교육이 이 아이들에게 실패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맥락이다. 할리우드가 보통 생략하는 것들.
나는 교육 영화를 볼 때마다 그것이 실제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한다. 영화 속 학생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위안받고 싶은 관객을 위한 것인가. 《라디컬》은 후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전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노력 자체가 이 장르에서는 드문 것이다.
결국 《라디컬》은 죽은 장르 안에서 움직이는 영화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의 의미이기도 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이고, 낡은 형식 안에서도 진실된 무언가를 건져냈기 때문에 성공이다.
나는 또 속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속은 것이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