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로봇이 링에 오른 이유 — 리얼 스틸
「리얼 스틸」 (Real Steel) · 숀 레비 (Shawn Levy) · 2011
구식(舊式)의 역습
이 영화는 사기다. 2011년에 개봉한 ‘리얼 스틸’은 제목부터 관객을 속인다. ‘진짜 강철’이라니. 정작 이 영화가 팔고 있는 건 강철이 아니라 눈물이다. 로봇 복싱이라는 번쩍이는 미래의 외피(外皮) 아래 숨어 있는 건, 반세기 전 헐리우드가 수백 번 써먹은 그 공식—‘아버지의 귀환’과 ‘약자의 역전극(逆轉劇)‘—이다. 숀 레비 감독은 이 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내건다. 뻔뻔함에도 등급이 있다면, 이 영화는 최상위권이다.
[1] 로키가 녹슬었을 때
《버라이어티》의 저스틴 창은 이 영화를 두고 “포스트모던한 아이러니의 갑옷 없이 감정 조작에 전력투구하는 스튜디오 영화”라 평했다. 정확하다. 휴 잭맨이 연기하는 찰리 켄튼은 인간 복서가 쓸모없어진 세계에서 연명하는 전직 권투선수다. 로봇이 인간을 링에서 밀어낸 근미래. 그는 고철 로봇을 끌고 지방 축제와 지하 도박장을 떠돈다. 그러다 자신이 버렸던 열한 살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와 재회한다. 여기서부터는 눈 감고도 예측된다. 반목, 동행, 화해, 그리고 절정의 경기. 감독은 이 예측 가능성을 약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예측 가능성 자체가 무기다.
[2] 8피트짜리 양심
기술적으로 이 영화는 정직하다. 레거시 이펙츠가 제작한 2.4미터 높이의 실물 애니마트로닉스 로봇들은 배우와 같은 세트에 서서 실제 무게감을 뿜어낸다. 디지털 보정은 그 위에 덧칠될 뿐이다. 요즘 영화들이 CG 캐릭터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골몰할 때, ‘리얼 스틸’은 반대로 간다. 진짜를 만들어 놓고 필요한 만큼만 디지털로 확장한다. 이 선택 덕분에 로봇 격투 장면에선 금속이 충돌하는 묵직한 타격감이 산다. 화면이 흔들려도 눈이 피곤하지 않다. 이건 많은 액션 감독들이 잊어버린 미덕이다.
[3] 아버지라는 고철
결국 이 영화의 진짜 질문은 로봇이 아니라 인간에게 던져진다. 왜 아버지들은 사라지는가. 찰리 켄튼은 자식을 버렸고, 11년을 모른 척했다. 돈이 없어서? 아니다. 그는 아들을 양육권 협상의 칩으로 내놓을 만큼 계산적이다. 그런 남자가 고철 로봇 ‘아톰’을 통해 아들과 다시 연결된다. 흥미롭게도 아톰은 ‘쉐도잉’ 기능을 갖고 있다. 조종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방하는 기능이다. 아들 맥스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가 직접 링에 서서 싸우는 거냐고. 아버지는 로봇 뒤에 숨어 주먹을 휘두른다. 그래서일까. 클라이맥스에서 찰리가 마침내 로봇의 눈높이가 아니라 아들의 눈높이로 내려앉는 순간, 영화는 그 뻔한 감정 조작의 임계점을 돌파한다.
[4] 승리하지 않아도 이기는 법
나는 이 영화가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건 칼럼니스트의 교만(驕慢)이다. 다만 묻고 싶다. 우리 시대에 ‘예측 가능한 선함’은 왜 이토록 촌스럽게 취급받는가. 반전이 없으면 지루하고, 냉소가 없으면 유치하다는 이 강박.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 세상의 추악함을 미리 알려주는 쪽을 ‘현실적 교육’이라 부른다. 자기 자식에게조차 아이러니의 갑옷을 입히는 부모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불편했던 건 영화의 뻔함 때문이 아니었다. 뻔한 따뜻함조차 쑥스러워하는 내 자신 때문이었다.
물론 이 영화엔 결함이 있다. 에반젤린 릴리의 역할은 장식에 가깝고, 로봇이 인간 권투를 대체한 세계의 사회적 함의는 철저히 무시된다. 왜 인간 복서들은 쫓겨났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영화는 묻지 않는다. 묻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체제 비판 영화가 아니라 가족 영화다. 그 한계를 욕할 수도 있고, 그 한계 안에서의 완성도를 인정할 수도 있다.
나는 후자를 택한다. 링 위의 아톰이 최종 라운드에서 무패의 챔피언 제우스를 상대로 서 있을 때, 아들 맥스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빠가 직접 싸워.” 찰리는 로봇의 쉐도잉 모드를 켜고, 자신의 주먹을 휘두른다. 로봇이 따라 친다. 결과는? 판정패다. 아톰은 지지 않았지만 이기지도 못했다. 그런데 관중은 환호한다. 이기지 않아도 이기는 방법이 있다는 걸, 이 구식 영화는 증명한다.
“네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I wanted you to fight for something).”
아들이 아버지에게 원했던 건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