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세룰리언의 교훈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 데이빗 프랭클 (David Frankel) · 200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이미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이미지 © TMDb

[1] 외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회사에서 가장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녔다. 패션 따윈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돌이켜보면 그것도 일종의 허세였다. ‘나는 겉치레에 휘둘리지 않는 본질적인 인간’이라는 자기최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디(앤 해서웨이)가 면접장에서 보여주는 바로 그 표정이다. 패션 잡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앞에서 “전 패션에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나 자신을 보았다.

[2] 이 영화에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앤디가 두 벨트 사이에서 고민하는 편집진을 보며 피식 웃자, 미란다가 조용히 입을 연다. 앤디가 입은 파란 스웨터가 어떻게 그녀의 옷장까지 왔는지를 추적하는 연설. 《버라이어티》의 토드 매카시는 이 ‘세룰리언 연설’을 두고 “지적 허세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패션을 정당한 문화적 표현으로 격상시킨다”고 썼다. 메릴 스트립은 이 대사를 속삭이듯 읊는다. 고함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당신이 ‘선택’이라 믿는 것조차 당신이 경멸하는 세계가 이미 결정해놓은 것이라는 사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선글라스를 휙 벗으며 부하직원들을 훑어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살의(殺意)와 지성(知性)이 공존한다.

[3] 미란다 프리슬리는 괴물인가.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슬쩍 묻는다. 괴물이 되지 않고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겠느냐고. 남성 상사가 똑같이 냉혹하면 ‘카리스마’라 불리고, 여성이 그러면 ‘악마’라 불리는 세상에서 미란다는 살아남았다. 영화 후반, 그녀가 이혼 소식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순간이 있다. 화장기 없는 얼굴. 그제야 보인다. 차가운 갑옷 안에 웅크린, 상처 입기 쉬운 인간이. 한국 직장인들이 이 영화를 유독 사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을의 위치에서 갑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지를 우리는 안다.

[4] 물론 이 영화에도 한계는 있다. 3막에서 앤디가 직장을 박차고 나가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결말은 너무 쉽다. 현실에서 우리는 그렇게 쿨하게 사표를 던지지 못한다. 월급이 무섭고, 경력 단절이 무섭고, 그래서 오늘도 악마의 심부름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허름한 옷을 입고 본질을 운운하던 시절, 나는 그저 명품을 살 돈이 없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