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아버지의 빛, 아들의 그림자 — 대부 2

「대부 2」 (The Godfather Part II)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 1974

대부 2 (1974) 이미지
「대부 2」 (1974) 이미지 © TMDb

속편은 왜 실패하는가. 이 질문은 오래 품어왔다. 대개의 속편은 전작의 성공 공식을 복제하려다 활력을 잃거나, 확장을 시도하다 중심을 놓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2》(1974)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자, 속편이라는 형식 자체를 재정의한 작품이다.

빈센트 캔비가 《뉴욕타임스》에서 이 영화를 두고 ‘타락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어두운 동화가 진정한 비극으로 변모했다’고 썼을 때, 그는 핵심을 짚었다. 《대부》가 한 가문의 부상을 다룬 신화였다면, 《대부 2》는 그 신화의 대가를 묻는 비가(悲歌)다. 코폴라와 마리오 푸조는 이중 구조라는 위험한 도박을 택했다. 1950년대 마이클 콜레오네가 제국을 공고히 하는 이야기와, 20세기 초 어린 비토가 시칠리아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권력을 얻어가는 이야기가 교차한다. 이 도박은 산만함 대신 공명을 낳았다.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는 두 시간대를 전혀 다른 색감으로 분리한다. 비토의 리틀 이탈리아는 호박색과 금빛으로 채워진다.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공동체의 온기가 남아 있고, 비토의 폭력에는 기이하게도 품격이 있다. 반면 마이클의 세계는 어둡고 차갑다. 레이크 타호의 저택은 성공의 상징이 아니라 영묘처럼 촬영된다. 마이클이 더 많은 것을 얻을수록 화면은 더 깊은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는다. 시각 언어 자체가 도덕적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는 말론 브란도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이어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인물을 창조한다. 그의 비토는 거의 전적으로 시칠리아 방언으로 말하지만 번역이 필요 없다. 눈빛과 절제된 몸짓이 모든 것을 전달한다. 아직 형식화되지 않은 존엄, 구세계의 코드가 살아 숨 쉬는 남자. 마이클이 잃어버린 모든 것이 이 젊은 아버지 안에 있다.

알 파치노의 연기는 전작보다 더 극단적인 절제를 택한다. 마이클은 스스로를 냉혹함 속에 가둔 인물이고, 파치노는 그 영적 공허를 점점 굳어가는 얼굴로 표현한다. 존 카잘의 프레도와 대면하는 장면들에서 두 배우 사이의 긴장은 오페라적 강도에 도달한다. 형제애와 배신, 용서할 수 없음과 용서받지 못함이 뒤엉킨다. 하바나 시퀀스에서 코폴라는 미국 제국주의의 카리브해 놀이터를 부패한 화려함으로 포착하고, 상원 청문회 장면들은 합법성이라는 환상 뒤에 숨은 폭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영화가 속편의 저주를 깬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대부 2》는 전작을 반복하지 않는다. 전작을 읽어낸다. 비토의 상승과 마이클의 하강을 포개놓음으로써, 같은 피를 나눈 두 인물이 어쩌다 이토록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제국을 세웠고, 아들은 제국을 위해 가족을 파괴한다.

200분의 러닝타임은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 시간은 벌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클은 홀로 앉아 있다. 기억 속 가족의 단란함이 스쳐 지나가고, 화면은 그의 텅 빈 얼굴에 머문다.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을 잃은 남자. “네가 한 짓인 걸 알아, 프레도. 네가 내 마음을 찢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