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영원이라는 이름의 감옥 — 토이 스토리 2
「토이 스토리 2」 (Toy Story 2) · 존 래시터 (John Lasseter), 리 언크리치 (Lee Unkrich), 애쉬 브래넌 (Ash Brannon) · 1999
유리 진열장 안. 조명은 부드럽게 쏟아지고, 먼지 한 점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서 카우보이 인형 우디가 서 있다. 바깥세상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박물관으로 향하기 직전의 이 정지된 순간이 「토이 스토리 2」의 심장부다.
버려진다는 것의 무게
픽사의 두 번째 장난감 서사는 속편의 법칙을 거스른다. 1995년 첫 편이 기술적 혁신으로 애니메이션의 지형을 바꿨다면, 4년 뒤 나온 이 작품은 더 깊은 곳을 찌른다. 영국 「영국의 한 영화지」의 레슬리 펠퍼린은 이 영화가 “아이들을 위한 작품에 진정한 감정적 복잡성을 위험 부담 삼아 걸었다”고 썼다. 틀린 말이 아니다.
카우걸 제시의 과거가 펼쳐지는 순간. 랜디 뉴먼이 작곡하고 사라 맥라클란이 부른 「When She Loved Me」가 흐르는 3분 남짓의 몽타주는 대사 없이 상실을 말한다. 함께 뛰놀던 소녀 에밀리가 자라고, 침대 밑에 잊힌 제시가 어느 날 기부 상자에 실려 나가는 장면. 이 시퀀스는 어린 관객에게 “너도 언젠가 장난감을 버릴 것이다”라는 불편한 진실을 건넨다. 존 래시터와 공동 연출자들은 이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았다.
소유와 사랑 사이
수집가 알 맥휘건은 우디를 훔친다. 빈티지 장난감으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그가 꿈꾸는 것은 일본 박물관에서의 영구 전시. 먼지도 마모도 없는 완벽한 보존 상태. 그러나 영화는 묻는다.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장난감은 과연 장난감인가.
우디의 딜레마는 단순한 귀환 서사가 아니다. 박물관에 가면 영원히 기억된다. 앤디에게 돌아가면 언젠가 다락방에 버려진다. 선택지는 영원한 보존과 유한한 사랑 사이에 놓인다. 여기서 픽사는 어린이 영화의 관습을 깬다. 해피엔딩이 보장된 세계에서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명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버즈 라이트이어의 부차 서사—개봉되지 않은 상태의 동명 인형과 마주하는 에피소드—는 날카로운 희극으로 기능한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우스꽝스럽게 비틀면서도, 우디의 실존적 위기와 거울처럼 마주 본다.
버려질 자유
공항 활주로 위 추격전의 물리적 쾌감보다 오래 남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우디는 결국 앤디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버려질 것이다. 그 앎이 사랑을 무의미하게 만들까. 영화의 대답은 반대쪽에 있다.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버려지는 것이다. 유리 진열장 속 불멸은 죽음의 다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