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미국 잔디밭의 위선, 한국 베란다의 조화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 · 샘 멘데스 (Sam Mendes) · 1999
지난주, 어릴 적 살던 동네 골목을 지나다가 이웃집 화분에 꽂힌 플라스틱 장미를 보았다. 햇빛에 바래지도 않고 비에 썩지도 않는 그 꽃은 어쩌면 그 골목에서 가장 완벽한 풍경이었다. 문득 샘 멘데스 감독의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가 떠올랐다. 해외의 한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미국 교외 생활에 대한 어둡고 우아한 해부”라고 불렀다. 그 문장이 플라스틱 장미처럼 오래 남아 있던 참이었다.
정원은 완벽했다. 잔디는 반듯하게 깎였고, 담장은 새하얬다. 하지만 그 집 안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딸이 부모를 조용히 겨누고 있었다. 영화는 중년 가장 레스터 번햄의 갱생(更生)과 몰락을 그리지만, 실은 우리가 얼마나 겉과 속의 간극을 견디며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레스터가 딸의 친구를 향한 사춘기적 집착으로 되찾은 ‘자유’는 우스꽝스럽고도 서글프다. 캐빈 스페이시의 연기는 비루함과 사랑스러움 사이를 오가며, 중년의 낭만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준다.
촬영감독 콘래드 홀의 카메라는 그 위태로움을 신화처럼 담아낸다. 완벽한 교외 주택의 기하학이 어느 순간 감옥처럼 보이는 장면에서 영화는 코미디와 비극의 경계를 지운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장미꽃잎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섬뜩하다. 열여섯 살 소녀를 향한 판타지는 결국 그 소녀의 실제 나이 앞에서 무너진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는 듯이.
옆집 소년이 찍은 비닐봉지 영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비닐봉지가 우주의 춤처럼 보이는 순간, 감독은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너무도 쉽게 쓰레기로 돌아간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 아닐까.
우리나라의 아파트 단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테리어, 아이들 성적표로 대변되는 가족의 서열, 이웃의 시선을 의식한 조경(造景). 우리는 미국의 교외가 아니라 한국의 고층 복도에서 똑같은 역할극을 한다. 영화 속 레스터가 그랬듯, 어느 날 문득 우리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묻게 될지 모른다. 다만 그 질문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빈 통장과 냉랭한 식탁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대한민국 아파트 베란다마다 피어 있는 조화(造花)를 보라. 그 꽃은 시들지 않는다. 물을 줄 필요도, 햇빛을 줄 필요도 없다. 다만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대신 먼지만 쌓일 뿐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믿는 것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플라스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