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착한 놈 코스프레가 제일 재미… 속엔 지질한 상처

「데드풀 2」 (Deadpool 2) · 데이빗 레이치 (David Leitch) · 2018

데드풀 2 (2018) 이미지
「데드풀 2」 (2018) 이미지 © TMDb
  1. 슈퍼히어로라는 게 그렇다. 사회학 졸업생이 서울 전세 대신 고담시의 부동산을 걱정하고, 정의감만큼은 사법고시 합격자 뺨치게 투철한 선량한 시민이 낮에는 재벌 3세, 밤에는 박쥐 탈을 쓴다. 그런데 웨이드 윌슨은 다르다. 남의 집 담장은커녕 자기 인생의 통장 잔고도 신경 안 쓴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오직 하나, 관객이 지금 이 화면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가다. 미국의 한 영화 전문지는 이 속편을 두고 “속편이 자기 정체를 알고 거들먹거리며 들어온다”고 썼다. 자기 정체라는 게 뭐, 성인 등급과 그보다 지저분한 입이다. 그 입으로 관객의 심드렁한 기대를 매번 뜯어고친다.

  2. 이 영화는 시작부터 비극이다. 그 비극을 무덤덤하게 흘려보내는 태도가 이 프랜차이즈의 본질이기도 하다. 죽음, 복수, 가족, 구원. 진지한 영화라면 두 시간 내내 붙들고 울었을 주제들을 제임스 건의 장바구니에 담긴 B급 정서로 마구 볶아버린다. 그런데 묘하게도 밑맛은 꽤 진하다. 감독이 바뀌면서 타이밍 감각은 더 노련해졌다. 배우는 여전히 그 자체로 무기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변기 뚫는 솔을 들고 있어도 저 특유의 속사포 비아냥으로 극장을 장악한다. 특히 조시 브롤린이 연기한 케이블이라는 미래에서 온 군인은 온몸이 무거운 진지함이라, 이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영화 제목이 픽션임을 잊게 만든다. 진지함과 허무함, 그 이질적인 두 질감이 유치한 진동을 만들어낸다.

  3. 새 캐릭터 도미노가 이 영화의 비밀 병기라고들 한다. 능력은 고작 행운이다. 주사위가 아니라 총알의 궤적이 그녀 편을 든다. 이 설정은 액션의 문법을 우습게 본다는 점에서 꽤 정직한 발상이다. 눈을 벗어난 순간 어떤 총알이 날아와도 어차피 빗나간다는 전제는, 슈퍼히어로 장르가 숭배하는 인과율의 폭력에 대한 명랑한 조롱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정직함은 여기까지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춰둔 심장을 꺼내 보여주려고 안달이다. 빈정대던 인간이 소년을 지키겠다고 나서고, 식구라는 낱말을 입에 올린다. 참을 수 없이 진부한 문장들을, 그러면서도 레이놀즈는 끝내 시니컬한 어조를 버리지 않는다. 자기가 지금 짠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관객보다 먼저 알고 있다는 듯. 그 고백의 반쯤 접힌 디테일이 이 영화의 생존 전략일 것이다.

  4. 나는 이 지점에서 잠깐 멈칫했다. 기자 생활 오래 했지만, 남 일에 정의로운 척하다 자기 이득 챙기는 인간은 골목마다 널렸다. 냉소를 연기하는 자가 사실은 누구보다 상처받기 쉬운 영혼이라거나, 농담이 그 사람의 방어막이라는 따위의 해석은 이미 오래전에 폐기된 심리학 개론 과제 같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자꾸 웃긴다. 내 안의 지칠 대로 지친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관객은 웨이드 윌슨에게서 진정한 냉소보다 완벽한 태도를 본다. 모든 것을 비웃는 태도. 자기도 모르게 눈물 날 것 같은 장면에서 손을 들어 하품하는 재주. 그 재주가 부럽다. 아니, 부러워지고 있다.

  5. 쿠키 영상은 이 프랜차이즈가 관객과 맺은 계약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간 여행으로 과거를 지우고, 다른 차원의 배우를 만지고, 결정적으로 제작진과 관객의 멱살까지 잡아 흔든다. 도를 넘은 자기 반영이지만, 저 정도면 차라리 열정이다. 이 영화는 가면을 벗기려는 자들에게 말한다. 내가 가면을 벗으면 민낯도 없고 빈 얼굴뿐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소리쳐댈수록 우리는 그 빈 곳을 궁금해하게 돼 있다. 결국 데드풀의 진짜 능력은 재생도, 칼질도 아니다. 망가진 서사의 조각을 휘저어 관객의 기대라는 이름의 어린애를 집어 던지는 것. 그러니 슈퍼히어로 영화를 볼 때, 당신도 한번쯤은 그 조롱의 방향이 화면 밖을 향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되어버린다. 그 순간 우리는 웃으면서 의자 밑으로 숨는다. 이 영화의 승리다. 어쩌면 당신이 아닌, 당신 안의 지겨운 착한 놈을 웃음거리로 만들기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