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제우스의 아들, 상품이 되다
「헤라클레스」 (Hercules) · 론 클레멘츠, 존 머스커 (Ron Clements, John Musker) · 1997
어른이 돼서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왜일까. 올림포스의 번개도, 뮤즈들의 복음성가 합창도 아니다. 나는 주기적으로 제임스 우즈가 맡은 하데스의 짜증 섞인 발성을 다시 듣고 싶어진다. 그 마른 목소리가 내는 “꺼져라, 꼬맹이” 같은 대사는 처음엔 그냥 웃겼다. 지금은 그 불쾌함이 디즈니가 고의로 설계한 상품임을 안다. 이 영화는 신화가 아니라 신화를 재판매하는 방식을 다루고, 그걸 가장 잘 아는 악당이 사실은 가장 솔직한 해설자다.
미국의 한 연예 전문지는 이 영화를 두고 “경건한 고전주의 대신 토요일 아침 만화의 운동에너지에 브로드웨이 야망을 합성한 작품”이라 평했다. 과장이 아니다.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는 헤라클레스를 고대 영웅에서 라커룸 인터뷰와 팬클럽을 가진 셀럽으로 옮긴다. 훈련 몽타주, 승리 뒤 광고 플래카드, 아이들의 환호는 스포츠 영화 문법을 그리스 신화에 입힌다.
신화가 아이돌 상품이 되는 속도
제랄드 스카프의 디자인은 우아함을 포기한다. 그리스 도기의 붉은 선과 신문만평의 각진 과장을 섞어, 디즈니 특유의 동안을 구겨버린다. 이 흉한 아름다움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특히 하데스는 걸음걸이부터 조증적이다. 우즈는 대본의 고대 수사를 할리우드 에이전트의 고속 거래 언어로 갈아끼운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영화는 서사극이 아니라 취업 박람회에 가까워진다. 악당이라기엔 너무 몸을 움직이고, 연예인이라기엔 너무 화가 나 있다. 그 중간감이 정확히 이 영화의 톤이다.
메가라는 디즈니 히로인의 복제가 아니다. 그녀는 첫사랑에 영혼을 판 뒤 후회 대신 냉소를 선택한 인물이다. 수전 이건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상처를 끌어안고 사랑을 부인하는 그 번호에서 가장 깊어진다. 이건 디즈니 공주가 꿈 대신 후유증으로 정의되는 드문 순간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결국 남성 영웅의 희생을 밀어주는 조연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여성 캐릭터의 복잡성을 슬쩍 보여주고, 정확한 지점에서 납작하게 눌러 둔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숭고(崇高)와 광고(廣告)의 병치에서 나온다. 뮤즈의 복음성가풍 합창은 제우스의 아들이 셔츠와 샌들을 파는 아이돌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실황 중계한다. 축하인지 비꼼인지 모호한 그 톤은 이 영화의 이중장부를 그대로 드러낸다. 디즈니는 고전을 조롱하는 동시에 고전을 판다. 노래에 맞춰 장난감을 사고 싶어질 때, 관객도 같은 매출 품목이 된다.
영국의 한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자기 마케팅 장치를 풍자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 장치의 부속품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의 하데스마저 장사꾼 말투를 쓰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할 때 어른의 시선으로 신화의 전유를 비평하는 척했다. 하지만 지금 귀에는 우즈의 “어, 안녕하신가, 근육 바보” 소리가 남아 있다. 결국 나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든 마케팅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 이번 주말에 굿즈 하나 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