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창 너머의 타인, 혹은 나의 실수

「보이저스」 (The Voyeurs) · 마이클 모한 (Michael Mohan) · 2021

보이저스 (2021) 이미지
「보이저스」 (2021) 이미지 © TMDb

새 아파트 거실. 짐은 아직 풀지 않았다. 피파와 토마스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맞은편 동을 본다. 카메라는 그들을 정면으로 담지 않고 유리에 비친 두 얼굴을 먼저 잡는다. 그 위로 옆집 남자의 셔츠 탈의와 여자의 뒷모습이 겹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미 알아차렸다. 이 영화는 관객인 나까지 창밖에 세워두지 않겠다는 거다. 나는 또 속는다. 그리고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는 원래 그렇게 작동한다. 남의 은밀한 장면을 훔쳐보는 쾌락에 스토커의 도덕적 불쾌를 한 스푼 섞는다. 피파는 호기심을 대놓고 받아들이고, 토마스는 민망해하면서도 창가를 떠나지 않는다. 둘 중 누가 더 위선적인지 영화는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유리창과 반사광으로 시선의 거리를 짠다. 관음은 멀수록 아름답고, 가까워질수록 침범이 된다. 이 부분은 정말 잘했다.

문제는 후반이다. 영화는 이 불편한 모호함을 참아내지 못하고 반전을 연발한다. 마치 스트리밍 자동 재생처럼, 이야기가 쉬지 않고 꼬인다. 거짓된 단서가 쌓이고 숨겨둔 정체가 드러날수록 피파의 심리는 도식에 가까워진다. 초반의 촘촘했던 응시의 심리학은 장르 기계에 자리를 내준다. 해외 평론가 하나는 이걸 두고 “후반의 반전이 앞선 관계 드라마를 배반한다”고 했다. 동의한다. 다만 나는 그 배반마저 즐겼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몬트리올의 창문들이다. 촬영감독은 도시를 거울 미로로 찍었다. 모든 유리가 사람을 비추고, 굴절시키고, 노출한다. 남의 침실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곧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그 시각적 일관성 덕분에 후반의 억지가 조금 묻힌다. 모든 장면이 시선의 무게를 잊지 않는다.

보고 나서 나는 내 방 창문을 가렸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밤마다 이웃의 창을 본다. 불 켜진 방, 움직이는 사람, 들리지 않는 대화. 그걸 지켜보며 종종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때가 있다. 그러니 이 글은 신뢰할 수 없다. 나는 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