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세상이 끝나도 사랑은 망상할 가치가 있다 — Fontaines D.C.
「Romance」 · Fontaines D.C. · XL Recordings · 2024 · 스트리밍 ↗
그리안 채튼이라는 보컬리스트가 있다. 더블린 출신 밴드 폰테인스 D.C.의 프런트맨이다. 그는 오랫동안 이안 커티스의 그림자에 시달렸다. 조이 디비전의 전설적인 보컬과 비교당하는 건 영광일 수도 있지만, 세 장의 앨범을 내도 계속 “누구누구 닮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짜증날 법도 하다. 채튼은 한 인터뷰에서 이 비교에 대해 “존경하지만 이제 좀 그만”이라는 뉘앙스로 말한 적이 있다. 신보 〈로맨스(Romance)〉는 그 선언의 실천이다.
4집이다.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와 작업했다. 아틱 몽키스, 블러, 고릴라즈 등과 호흡을 맞춰온 거물이다. 결과물은 명징(明澄)하다. 이전 작품들이 지녔던 거친 포스트펑크의 질감이 걷혔다. 대신 시네마틱한 사운드스케이프가 펼쳐진다. 밴드 전체의 연주가 정교하게 맞물린다. 배경 하모니들은 노래 속 또 다른 서사를 들려준다.
‘호스니스 이즈 더 왓니스(Horseness Is The Whatness)‘를 들어보라. 채튼이 어지럽게 묻는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그 단어가 대체 뭐야?” 듣다 보면 모르겠다. 사랑인지, 욕망인지, 아니면 그냥 망상인지. 앨범 전체가 그렇다. 종말론적 이미지가 곳곳에 깔려 있다. 불안과 파국의 짙은 안개. 그런데 밴드는 고집한다. 그래도 로맨스는 빠져들 만한 망상이라고.
‘버그(Bug)‘와 ‘디자이어(Desire)‘는 심금을 울리는 트랙이다. 채튼의 보컬은 매번 다르게 적응하며 놀랍도록 다채롭다. 멜로디는 풍성해졌다. 불편한 분위기를 감미로운 선율이 감싼다. 이 긴장감이 앨범의 미덕이다. 솔직히 느린 곡 몇 개는 좀 늘어진다. 그러나 초월적인 순간들이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세 장의 앨범 동안 폰테인스 D.C.는 포스트펑크 씬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네 번째 앨범으로 선언한다. 이제 그 틀에서 나가겠다고. 더 넓은 영토를 향해 탐험하겠다고. 음악 칼럼니스트로서 별로 할 일 없이 좋은 앨범만 소개하면 참 편하겠다만, 이 앨범은 진짜 그렇다.
지금 세상은 어딘가 기울어져 있다. 모두가 불안하고 뭔가 무너지는 느낌을 안고 산다. 그 와중에 “그래도 사랑에 빠지자”고 말하는 앨범이 나왔다. 종말 앞에서의 로맨스.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저항일지 모른다. 한번 들어보시라. 후회는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