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켄드릭 라마, 왕좌의 무게 — Kendrick Lamar
「지엔엑스 (GNX)」 · Kendrick Lamar · pgLang / Interscope Records · 2024
훼손된 벽화 앞에서
컴튼 거리의 벽화가 훼손되어 있다. 켄드릭 라마의 얼굴 위에 누군가 낙서를 했다. 앨범 GNX는 그 장면에서 시작한다. 피해자의 한탄이 아니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남자의 분노, 그것도 이미 모든 것을 이긴 남자의 분노다. 2024년, 드레이크와의 전쟁에서 대중의 판정승을 거둔 래퍼가 첫 곡에서 던지는 질문은 간명하다. 왜 너희는 나를 존경하지 않는가.
勝者의 불안
기묘한 앨범이다. 승리의 기쁨이 없다. ‘Not Like Us’로 토론토의 제왕을 조롱했고, 잉글우드의 준틴스 콘서트에서 크립과 블러드를 한 무대에 세웠다. 그럼에도 켄드릭은 관대해지지 않는다. GNX에 드레이크 디스 트랙은 한 곡도 없다. 대신 44분 동안 자신을 배신한 동료들, 자신을 얕본 업계, 자신을 도용한 문화 관광객들을 향해 분노한다. ‘Peekaboo’의 압축된 호흡, ‘TV Off’에서 터지는 머스타드 비트, 어느 것도 웃지 않는다.
비평가 톰 브레이한은 이 앨범을 50센트의 ‘Get Rich Or Die Tryin”과 제이지의 ‘The Blueprint’에 비교했다. 한 아티스트가 시대를 지배하는 순간의 결정체라는 뜻이다. 나는 조금 다르게 읽는다. GNX는 지배가 아니라 경계(境界)의 기록이다. 왕좌에 앉은 자가 여전히 위협을 감지하는 상태.
로스앤젤레스라는 선언
이 앨범의 정치학은 지리학이다. 켄드릭은 메이저 레이블의 글로벌 스타 대신 AzChike, Dody6, Hitta J3, 페이소 같은 LA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을 전면에 세운다. 마리아치 가수 데이라 바레라의 코러스는 로스앤젤레스가 흑인만의 도시가 아니라 흑인과 갈색 인종의 도시임을 상기시킨다. 토론토도, 애틀랜타도, 브루클린도 아닌 컴튼과 왓츠와 잉글우드가 2024년 힙합의 문법을 정의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피치포크의 알퐁스 피에르는 정확히 이 지점을 공격했다. 6.6점, 켄드릭 라마가 그 매체에서 받은 최저점이다. 피에르의 논지는 간단하다. 이 모든 지역주의가 결국 더 정교한 브랜딩이 아닌가. 드레이크를 문화 관광객이라 조롱하면서, 정작 켄드릭 자신은 가장 매끈하게 설계된 메이저 레이블 앨범을 내놓았다. 眞正性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포즈가 될 때, 그것은 저항인가 마케팅인가.
불편한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켄드릭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던 날 뷰익 GNX를 타고 병원에서 돌아왔다. 노동계급 흑인 남성의 토템이었던 그 차는 이제 수집가들의 고가 빈티지가 되었다. 거리의 정통성과 축적된 부(富) 사이에서 켄드릭은 선택하지 않는다. 둘 다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權力을 택한 예언자
To Pimp A Butterfly의 켄드릭은 예언자였다. 흑인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부하고, 제도적 폭력의 구조를 질문했다. GNX의 켄드릭은 다르다. 구조적 질문 대신 개인적 승리를 선택했다. 롤링스톤의 모시 리브스는 이를 ‘예언 대신 권력’이라 요약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비난하지 않겠다. 예언자의 역할이 언제나 권력자의 역할보다 고귀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힙합에서는.
SZA가 부른 ‘Luther’와 ‘Gloria’에서만 잠시 분노가 멈춘다. 공격 대신 숨을 쉬는 순간이다. 그 짧은 틈새가 오히려 앨범 전체의 긴장을 증명한다.
켄드릭은 ‘Wacced Out Murals’에서 이렇게 랩한다. “무시(disrespect)가 나를 움직인다.” 2024년 최고의 래퍼가 가장 솔직하게 자신을 정의한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