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지루함이 낳은 농담, 농담이 낳은 앨범 — Wet Leg
「Wet Leg」 · Wet Leg · Domino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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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버튼을 누르면 기타 한 대가 먼저 등장한다. 엉성하게 긁히는 듯한 리프, 그리고 뒤따르는 베이스라인. 둘이 맞물리자마자 드럼이 쿵쿵 박자를 밀어붙인다. 이윽고 여자 목소리 하나가 덤덤하게 읊조린다. “Is your mum coming to pick you up?” 이게 첫 곡 「Being In Love」의 오프닝이다. 사랑에 빠졌다는 제목치고는 표정이 너무 밋밋하다. 감정이 폭발해야 할 자리에서 마치 편의점 알바생이 영수증 필요하냐고 묻는 것 같은 톤이다. 이 무표정 안에 웻 렉(Wet Leg)의 전부가 담겨 있다. 영국 와이트섬 출신 듀오, 리안 티즐과 헤스터 챔버스가 2022년 도미노(Domino) 레이블에서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작. 인디 록과 포스트 펑크 사이 어딘가에 좌표를 찍은 이 앨범은 출시 직후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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웻 렉에 대한 첫 번째 물음은 보통 이것이다. “「Chaise Longue」 하나로 뜬 밴드 아닌가요?” 2021년 틱톡에서 바이럴을 탔던 그 곡 말이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앨범의 대부분이 바이럴 성공 이전에 녹음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시장의 기대치를 의식해 후속 히트를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두 사람은 원래 각자 ‘진지한’ 음악 프로젝트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력이 있다. 이번에는 기필코(期必可) 성공하겠다는 악착같은 마음이 아니라, 그냥 서로를 웃기려고 농담을 주고받다가 곡이 됐다고 한다. 이 부담 없음이 음반 전체에 묘한 부력처럼 깔려 있다.
사운드의 좌표를 짚자면 1990년대 브릿팝의 엘라스티카, 펄프, 그리고 미국 인디 록의 페이브먼트가 떠오른다. 페이브먼트 특유의 느슨한 기타 톤이 웻 렉의 곡 안에서 단순한 노스탤지어로 끝나지 않고, 정서가 폭발하는 순간 영리한 긴장-이완 구조로 변형된다. 프로듀서 댄 캐리(Dan Carey)의 손길 덕분인지, 수공예적 친밀감을 유지하면서도 윤곽이 단단하다. 뉴웨이브의 B-52s나 부시 테트라스 같은 이름을 떠올리는 평자도 있는데, 정작 듀오 본인들은 그런 선례를 의식적으로 모방한 흔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모르고 만든 듯한 무지(無知)의 자유로움이 매력을 만든다.
가사가 품고 있는 정서는 조금 더 복잡하다. 「Angelica」는 파티장에서 도망치고 싶은 사회불안을 부조리극처럼 그려낸다. 「I Don’t Wanna Go Out」은 이십대 후반의 권태와 분노를 어두운 유머로 감싸 안는다. 「Wet Dream」의 망상적 욕망과 「Ur Mum」의 통렬한 욕설 사이에는 사실 같은 사람의 모순된 감정이 흐르고 있다. 슬픔을 가리기 위해 농담을 던지는 세대, 팬데믹 격리 이후 정중한 음악보다 누군가의 비위를 거스를 만한 사운드를 갈망했던 세대. 웻 렉은 그 갈증(渴症)의 한가운데로 정확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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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 Mum」의 여섯 음 기타 리프는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짜증날 만큼 중독적이다. 「Too Late Now」는 페스티벌 무대에서 폭발할 만한 펀치를 지녔다. 「Loving You」는 발라드형 보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물론 「Oh No」 같은 트랙은 다른 곡들에 비해 힘이 빠진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면 이 데뷔작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짜로 자신만의 농담을 가진 밴드는 결국 이긴다. 「Being In Love」의 한 구절로 글을 닫는다. “난 사랑에 빠졌다는 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말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가장 정확해지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