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형의 방에서
열두 살 여름방학, 형의 방문을 몰래 열었다. 형은 군대에 있었다. LP판이 빼곡한 선반에서 검은 재킷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앨범 전체가 검정이었고, 밴드 로고만 희미하게 빛났다. 턴테이블에 올렸을 때 스피커에서 터져 나온 건 장례식 종소리였다. 그리고 기타 리프 하나가 방 전체를 점령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록 음악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착각했다.
죽음을 밟고 선 자들
1980년 2월, 본 스콧이 죽었다. 서른세 살이었다. 대부분의 평론가는 AC/DC도 함께 묻힐 것이라 예상했다. 《롤링 스톤》의 데이비드 프릭은 이 앨범을 “무덤에서 솟아오른 무시무시한 기념비”라고 썼다. 틀린 말이 아니다. 타이틀 트랙 첫머리의 종소리는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살아 있다.
브라이언 존슨은 본 스콧의 대체재(代替材)가 아니었다. 그는 전혀 다른 종류의 폭력이었다. 스콧에게 있던 냉소와 위트 대신, 존슨은 사포로 목을 긁는 듯한 포효를 가져왔다. 밴드는 이 차이를 약점으로 숨기지 않고 전면에 내세웠다. 애도(哀悼)의 시간은 없었다. 오직 전진만 있었다.
단순함이라는 폭력
영 형제의 기타 리프는 초보자도 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것을 먼저 치지 못했는가. 《NME》의 찰스 샤 머레이는 “이 밴드를 단순하다고 폄하하는 비평가들은 요점을 완전히 놓친 것”이라고 썼다. 정확하다. 이 음반의 미덕은 복잡함의 부재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모조리 제거한 폭력적 간결함에 있다.
프로듀서 멋 랭은 모든 악기에 정확한 자리를 부여했다. 클리프 윌리엄스의 베이스와 필 러드의 드럼은 흔들림 없는 토대를 깔고, 그 위에서 기타가 모루처럼 내리찍는다. ‘Shoot to Thrill’의 긴장, ‘You Shook Me All Night Long’의 선동(煽動). 이 음반에 숨 고르기란 없다. 열 곡 전부가 동일한 밀도로 청자의 두개골을 흔든다.
1980년, 분노의 언어
이 음반이 쏟아져 나온 1980년은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해다. 영국에서는 대처가 집권 2년 차로 접어들며 탄광을 폐쇄하고 노동조합을 박살 냈다. 호주 출신의 이 다섯 남자가 부른 노래에 정치적 메시지는 단 한 줄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Rock and Roll Ain’t Noise Pollution’을 들으면 공장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이 보인다. 맥주 한 캔과 담배 한 개비,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리프. 그것이 그들의 저항이었다.
정교한 담론은 지식인의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볼륨 노브밖에 없다. AC/DC는 그 노브를 끝까지 돌리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언어임을 증명했다. 복잡한 세상에 복잡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 그냥 더 크게 틀면 된다.
그래서 나는
마흔이 넘어 다시 이 음반을 튼다. 여전히 첫 종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형의 방에서 LP를 훔쳐 들었던 그 열두 살은 지금 원고료를 받고 음악에 대해 떠든다. 밴드가 무대에서 땀을 쏟는 동안 나는 책상 앞에서 형용사나 고르고 있다. 누가 더 정직한 노동을 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