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23곡짜리 여름이 세계를 집어삼켰다 — Bad Bunny

「Un Verano Sin Ti」 · Bad Bunny · Rimas Entertainment · 2022 · 스트리밍 ↗

Un Verano Sin Ti - Bad Bunny 음반 표지
Bad Bunny — 「Un Verano Sin Ti」 (2022) 표지 © iTunes / 레이블

2022년, 스포티파이 연간 스트리밍 1위는 영어권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테일러 스위프트도, 드레이크도 아닌 푸에르토리코 출신 배드 버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비영어권 음악이 글로벌 스트리밍 왕좌에 오른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Un Verano Sin Ti〉는 바로 그 해의 앨범이다.

23곡, 러닝타임 73분. 이 숫자만 보면 과잉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듣다 보면 군더더기가 없다. 〈롤링스톤〉의 수지 익스포지토는 이 앨범을 “올해 가장 더운 날 부는 시원한 바람”이라고 썼다. 농담 같은 비유인데 정확하다. 뎀보우 리듬 위로 미끄러지는 ‘Moscow Mule’, 90년대 레게톤 황금기를 소환하는 ‘Me Porto Bonito’, 신스팝과 몽환이 뒤섞인 ‘Ojitos Lindos’. 매 곡이 다른 색이지만 전부 같은 공기를 공유한다. 축축하고, 뜨겁고, 조금 쓸쓸한.

내가 가장 오래 곱씹은 곡은 ‘El Apagón’이다. 제목은 ‘정전’이라는 뜻인데, 정전은 곧 푸에르토리코의 만성적 현실이다.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 무너진 전력망, 미국 자본에 팔려나가는 해안가 땅, 쫓겨나는 원주민. 배드 버니는 이 모든 걸 노래에 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곡은 춤추게 만든다. 설교하지 않는다. 파티에 초대해놓고 당신이 알아서 메시지를 읽어가길 기대한다. 이게 시위 구호보다 훨씬 무섭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머리는 나중에라도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한국에서 배드 버니의 존재감은 여전히 미미하다. 라틴 음악 자체가 국내 차트에서 맥을 못 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적 시도들—뎀보우에 인디록 기타를 얹고, 맘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하우스 비트 위에 스페인어 랩을 올리는—은 K팝이 오래전부터 해온 장르 믹싱과 본질적으로 같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K팝은 세계를 향해 팔고, 배드 버니는 자기 섬을 향해 노래한다. 어느 쪽이 더 오래갈까. 나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라틴 음악을 공부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23곡짜리 앨범이 한 곡도 버릴 게 없다고 느껴질 때, 그건 아티스트가 정점에 있다는 뜻이다. ‘Tití Me Preguntó’의 폭발적인 에너지, ‘Tarot’의 진심 어린 상실감, ‘Andrea’가 보여주는 맘보에 대한 헌사. 이건 여름 플레이리스트가 아니다. 푸에르토리코라는 섬 전체를 담은 일기장이다.

음악이 시대의 거울이라면, 이 앨범은 무엇을 비추고 있을까. 식민지의 아픔? 축제의 열기? 아니면 둘이 공존하는, 뒤틀린 현실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