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숙취 그 자체가 미학이 될 때 — Ella Langley

「still hungover」 · Ella Langley · Columbia Nashville · 2024 · 스트리밍 ↗

still hungover - Ella Langley 음반 표지
Ella Langley — 「still hungover」 (2024) 표지 © iTunes / 레이블

새벽 4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어쿠스틱 기타의 코드 체인지가 이상하게 귀에 꽂힌다. 페달 스틸이 우는 듯 멀어지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그래서 네가 떠났구나(that’s why i left)“를 내뱉는다. 엘라 랭글리의 데뷔 앨범 ‘still hungover’는 그렇게 시작한다. 《롤링스톤》의 조셉 후닥이 ‘바 시인(barroom poet)의 감성’이라 칭한 그 무엇이 첫 트랙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바이럴 히트 그 너머

라일리 그린과 녹음한 듀엣 ‘you look like you love me’가 틱톡을 강타하고 스트리밍 차트를 점령하면서, 앨라배마 출신의 이 신예 싱어송라이터는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됐다. 바이럴 성공이라는 타이틀은 때론 독이 된다. 한 곡짜리 히트메이커란 꼬리표가 따라붙기 쉽상이다. 그러나 이 정규 앨범은 랭글리가 단순한 바이럴 현상이 아님을 증명한다.

전 곡 작사에 참여한 그녀는 현대 로맨스의 난장판(亂場板)을 기꺼이 그린다. 위스키의 위안, 끊지 못하는 전 연인, 아침에 눈 뜨면 후회할 새벽의 문자들. ‘hungover’나 ‘blame it on me’ 같은 트랙에서 랭글리는 여성 컨트리 아티스트에게 흔히 기대되는 얌전한 서사를 철저히 배반한다. 《버라이어티》의 크리스 윌먼이 “장르 내 획일성에 맞서는 개성(individuality)“이라 평가한 대목이 여기서 두드러진다.

여성 컨트리의 새 국면

컨트리 음악 메인스트림은 오랜 시간 남성 목소리가 지배해왔다. 술 취해 망가지고, 실수하고, 다시 트럭에 오르는 이야기는 남자 가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여성은 흔히 책임감 있는 존재, 도덕의 수호자 역할을 강요받았다. 랭글리는 이 이중 잣대를 통째로 뒤엎는다.

프로덕션은 현대 내슈빌 라디오의 문법 안에 머문다. 선명한 드럼, 탱글거리는 기타, 간간이 삽입된 프로그래밍 사운드. 특별히 혁신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랭글리의 목소리는 낡은 그릇에 담겨도 다르게 울린다. 젊은 나이에 비해 풍파(風波)를 겪은 듯한 음색이 모든 가사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미란다 램버트의 초기 패기와 Z세대 특유의 감각이 뒤섞인 그 무언가.

앨범 후반부가 다소 모멘텀을 잃는다는 건 사실이다. 미드 템포 곡 몇 개가 서로 닮아 흐릿해지는 지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이 데뷔작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지 않는다.

숙취는 끝나지 않는다

‘still hungover’라는 제목은 묘하게 상징적이다. 어젯밤의 실수가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듯, 랭글리의 노래는 깔끔하게 매듭짓기를 거부한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진솔(眞率)한 울림을 만든다. 내슈빌이 다음 여성 슈퍼스타를 찾고 있다면, 랭글리는 강력한 후보 중 하나다.

컨트리 팬이 아니라도 이 앨범은 들어볼 가치가 있다. 장르의 경계란 결국 레이블이 정한 분류에 지나지 않으니까. 당신도 누군가의 술자리에서, 혹은 새벽 귀갓길에 한 번쯤 후회한 적 있지 않은가. 랭글리는 그 순간을 노래로 남긴다. 부끄러움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