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알레그로 Allegro
엔터산업 종사자
알레그로의 음악실
클래식·재즈·팝을 모두 다룬다. 몸 담고 있는 음악 산업과 음반의 결을 함께 짚는다. 빠르되 정확한 호흡을 좋아한다.
총 12편
- 「Rain Sounds For Sleep」
재생 버튼을 누르면 비가 내린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창밖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방 안으로 퍼진다. 천둥은 없고, 바람 소리도 끼어들지 않는다. 멜로디와 가사, 박자라는 단서는 처음부터 지워져 있다. 오직 유리창에 부서지는 물방울의 결만이 트랙마다 차곡차곡 쌓인다. 귀를 기울여도 화음이 피어나지 않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조차 섞이지 않는다. 2020년 자체 발매된…
- 「good kid, m.A.A.d city (Deluxe)」
컴튼의 한 소년, 장편 영화를 짓다
제이슨 그린은 미국의 한 음악 전문지 평에서 이 앨범을 "몰입형 이야기"라 불렀다. 정확한 말이다. 켄드릭 라마는 2012년, 자기 마을 컴튼의 하루하루를 한 편의 영화처럼 짜 냈다. 앨범 부제부터 "A Short Film by Kendrick Lamar"다. 부모님의 음성 메시지가 시퀀스를 끊고, 곡과 곡 사이로 집에 돌아가는 밤길의 공기가 스민다. 'Sherane…
- 「Take Care (Deluxe Version)」
새벽 세 시, 취약함의 사운드트랙 — Drake
새벽 세 시, 텅 빈 도로를 달리는 차 안. 창밖으로 비가 흩뿌린다.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에서 온기가 빠져나간다. 이런 순간에 어울리는 음악이란 무엇인가. 쿵쿵거리는 비트도, 화려한 멜로디도 아니다. 차라리 침묵에 가까운 것, 그러나 침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소리다. 2011년 드레이크가 내놓은 2집 'Take Care'는 그런 음반이다.…
- 「Off the Wall」
세의 완벽, 그 위험한 성취 — Michael Jackson
1979년 미국 빌보드 차트에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스물한 살짜리 흑인 청년의 솔로 앨범이 R&B 차트와 팝 차트를 동시에 점령한 것이다. 《롤링 스톤》의 스티븐 홀든은 이 앨범을 두고 "잭슨 5의 긴 그림자에서 걸어 나온 완전한 성인 예술가의 출현"이라 썼다. 'Off the Wall'이다.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 「KPop Demon Hunters (Soundtrack from the Netflix Film)」
가상 아이돌, 진짜 산업 — KPop Demon Hunters Cast, HUNTR/X & Saja Boys
영국 《NME》는 이 사운드트랙을 두고 "넷플릭스가 K팝 현상을 통째로 제조하려는 시도"라고 썼다. 제조(manufacturing)라는 단어가 비꼬는 뉘앙스로 쓰인 건지, 감탄의 의미인지는 문맥만으로 판단이 어렵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KPop Demon Hunters》 사운드트랙은 넷플릭스가 영화를 위해 창조한 가상의 아이돌 그룹 두 팀—걸그룹…
- 「$ome $exy $ongs 4 U」
드레이크에게 — PARTYNEXTDOOR & Drake
이 음반은 실패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공을 거부한 음반이다.
- 「Kehlani」
오클랜드에서 온 편지, 침묵의 무게를 담다 — Kehlani
지난주 새벽, 오래된 습관대로 음반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했다. 켈라니의 새 앨범이었다. 첫 곡 'Fault Lines'가 흐르는 동안 접시 세 개를 닦았다. 두 번째 곡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싱크대 앞에 멈춰 서서 물만 흘려보냈다. 비누 거품이 손에서 마르는 줄도 몰랐다.
- 「Michael: Songs From The Motion Picture」
노스탤지어를 넘어선 리마스터 — Michael Jackson
니콜라스 브리텔이 〈석세션〉 스코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의 'Human Nature'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곡에는 뉴욕 밤하늘의 차가움이 있어요. 신스 패드가 도시 위 별처럼 떠 있죠." 그의 관찰은 훗날 〈마이클: 전기영화 사운드트랙〉 속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결실을 맺었다. 영화 음악은…
- 「From Afar」
펠트로 덮은 피아노, 침묵을 연주하다 — Víkingur Ólafsson (비킹귀르 올라프손)
"반복이란 차이(差異)의 생산이다." 들뢰즈의 말을 클래식 음반 시장에 대입하면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2022년 도이체 그라모폰이 내놓은 비킹귀르 올라프손의 「From Afar」는 같은 프로그램을 두 번 녹음해 두 장으로 묶었다. 첫 장은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두 번째 장은 펠트를 끼운 업라이트. 동일한 손가락이 동일한 선율을 짚되 악기만 바꾸면…
- 「still hungover」
숙취 그 자체가 미학이 될 때 — Ella Langley
새벽 4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어쿠스틱 기타의 코드 체인지가 이상하게 귀에 꽂힌다. 페달 스틸이 우는 듯 멀어지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그래서 네가 떠났구나(that's why i left)"를 내뱉는다. 엘라 랭글리의 데뷔 앨범 'still hungover'는 그렇게 시작한다. 《롤링스톤》의 조셉 후닥이 '바 시인(barroom poet)의…
- 「The Sky Will Still Be There Tomorrow」
여든여섯, 그가 침묵을 리듬으로 쓰는 법 — Charles Lloyd
지난주 토요일, 오래된 LP를 정리하다가 1966년 《Forest Flower》의 표지를 마주쳤다. 먼지를 털고 턴테이블 위에 올렸더니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건 28세 청년의 색소폰이었다. 젊은 찰스 로이드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그레이트풀 데드나 도어스 옆에 서서 록 팬들에게 재즈를 '들이밀던' 사람이었다. 그의 옆에는 스물세 살 키스 자렛과 스물넷…
- 「더 빈 리사이틀 (The Vienna Recital)」
악마의 계단을 오르는 법 — Yuja Wang (유자 왕)
2022년 4월 26일, 빈 콘체르트하우스. 무대 위 스타인웨이 앞에 앉은 유자 왕이 첫 음을 내려찍는다. 글루크/즈감바티의 오르페오 멜로디가 아니다. 도이체 그라모폰은 그날 밤 쇤베르크로 시작된 실제 공연에서 상당 부분을 잘라냈다. 음반에 남은 것은 베토벤, 브람스, 스크랴빈, 카푸스틴, 리게티, 글라스, 알베니스, 그리고 앙코르 마르케스. 순서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