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검은 망토가 사막 위를 스친다. ‘Frozen’의 뮤직비디오에서 마돈나는 까마귀로 변하고, 늑대로 분열하고, 다시 한 명의 여자로 수렴한다. 윌리엄 오비트가 설계한 신시사이저의 빙하가 그 위를 덮는다. 화면 속 그녀의 나이는 서른아홉. 팝의 문법에서 그것은 은퇴를 권고받는 숫자다.
이 앨범은 변신인가. 답은 아니다.
《롤링스톤》의 롭 셰필드는 이 음반을 두고 “마돈나가 수년간 위협해온 앨범”이라 썼다. 정확한 표현이다. 위협. 그녀는 언제나 다음 변신을 예고하며 대중을 조종해왔다. 그러나 ‘Ray of Light’는 이전의 변신들과 본질이 다르다. 의상이나 이미지의 교체가 아니라 소리 자체의 재편이다. 앰비언트와 트랜스, 일렉트로니카의 질감이 그녀의 목소리를 감싼다. 타이틀곡에서 커티스 메이필드의 기타 샘플이 신시사이저와 충돌하며 폭발할 때, 거기엔 분명 환희(歡喜)가 있다. 그러나 그 환희는 20대의 것이 아니다.
‘Drowned World/Substitute for Love’는 명성의 공허함을 고백한다. ‘The Power of Good-Bye’는 상실을 응시한다. 카발라와 모성, 의미에 대한 탐색이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NME》의 사이먼 윌리엄스는 “강요되거나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산스크리트어 찬트가 삽입된 ‘Shanti/Ashtangi’는 분명 문화적 전유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이 앨범의 야심을 증거한다.
마흔 살의 여성이 팝 차트의 정상에서 영적 구도(求道)를 노래한다는 것. 1998년에 그것은 상업적 자살로 읽힐 수 있었다. 그러나 마돈나는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승리했다. ‘Ray of Light’는 그래미 4관왕을 휩쓸었고,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메인스트림 팝을 점령하는 시대를 예고했다.
여기서 묻는다. 마흔 살의 여성은 왜 증명해야 하는가. 이십 년 경력의 남성 뮤지션이 명상을 노래하면 ‘성숙’이라 불리고, 같은 나이의 여성이 그러면 ‘위기의 변신’으로 해석되는 구조. 마돈나는 그 구조 자체를 깨부수기 위해 가장 급진적인 사운드를 선택했다.
2026년, 예순일곱 살의 마돈나는 여전히 무대에 선다. 나이 든 여성의 몸이 공론장에서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그러나 1998년의 이 앨범은 말한다. 변신은 젊음의 특권이 아니라 생존자의 언어라고. 늙어가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빛을 굴절시키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마흔 살에 아이를 낳고, 신시사이저로 기도문을 쓴 여자가 팝의 문법을 다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