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ind의 〈Break the Cycle〉은 과대평가된 앨범이다. 그리고 동시에 저평가된 앨범이기도 하다.
2001년, 뉴메탈이 MTV를 점령하던 시절이었다. 스파이크 팔찌 찬 밴드들이 분노를 팔고, 소년들은 그 분노를 사들였다. 그 와중에 Staind는 묘하게 비껴 서 있었다. 에런 루이스의 목소리는 분노보다 후회에 가까웠고, 공격보다 고백에 기울어 있었다. 《모조(Mojo)》의 짐 어빈은 이들을 ‘고백적 싱어송라이터 전통에 더 가깝다’고 썼는데, 정확한 진단이다. 그들은 화난 척하는 예민한 아이들이 아니라 진짜 상처 입은 사람처럼 들렸다.
‘It’s Been Awhile’을 들어보라. 어쿠스틱 기타 위로 루이스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중독과 후회, 망가진 관계에 대한 가사가 흐른다. “It’s been awhile since I could hold my head up high.”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노래. 나는 이 곡을 2001년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너무 익숙한 전개, 조용히 시작해서 드럼이 터지고 코러스에서 폭발하는 그 공식(公式).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고, 여전히 이 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프로듀서 조시 에이브라함은 매끈하게 다듬었다. 어쩌면 너무 매끈하게. 무거운 기타 톤은 탁하지 않고, 드럼은 적절한 힘으로 치며, 보컬을 압도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일이다. 문제는 이런 전문성(專門性)이 때로 진정성을 갉아먹는다는 거다. 앨범의 헤비한 트랙들—‘Open Your Eyes’ 같은—은 당시 록 라디오를 메우던 수십 개 밴드와 구별이 안 된다. 다운튠된 기타, 가공된 분노, 조용-시끄러움의 반복. 14곡, 너무 길다. 후반부로 갈수록 곡들이 서로 섞인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수백만 장 팔린 데는 이유가 있다. 루이스는 고통을 파는 게 아니라 고통을 나눈다. 교외에 사는 십대들에게 “너만 힘든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목소리. 《롤링스톤》의 롭 셰필드 표현대로라면 “더 심한 일을 겪은 사람처럼 들리는 누군가에게 자기 고통을 인정받고 싶은” 청자들에게, 루이스는 정확히 그걸 제공한다. 조작적이라고? 물론이다. 하지만 조작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루이스에게 그 기술이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앨범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술인가, 상품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Epiphany’나 ‘Fade’ 같은 조용한 곡에서 밴드가 물러나고 루이스 혼자 남을 때, 거기엔 분명 진짜가 있다. 공격으로 포장한 감수성이 아니라 그냥 감수성. 그 순간들이 이 앨범을 구원한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타일러 더든이 말했다. “자기 파괴야말로 자기 향상의 답이야.” 에런 루이스는 아마 동의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자기 파괴를 노래로 바꿨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