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아편 연기 속 흐릿한 얼굴, 레오네가 남긴 마지막 질문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 198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 이미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 이미지 © TMDb

1.

1933년 차이나타운. 아편굴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누워 있다. 흐릿한 연기 사이로 전화벨이 울리고, 남자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천장을 응시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이렇게 시작된다. 영국 영국의 한 영화 평론가가 “갱스터 서사시인 동시에 프루스트적 명상”이라 불렀던 이 작품은, 첫 장면부터 관객에게 묻는다. 지금 보는 것이 현실인가, 기억인가, 아니면 아편이 만든 환각인가.

2.

레오네는 세 개의 시간대―1920년대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빈민가, 금주법 시대의 1930년대, 그리고 쇠락(衰落)한 1968년―를 뒤섞어 놓았다. 이 비선형 구조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산산이 부서진 삶을 재조립하려는 의식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누들스는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과거를 찾아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마주하는 것은 기억의 왜곡과 배반이다. 레오네는 수십 년의 시간을 한 컷의 문(門) 열림으로 건너뛰기도 하고, 같은 공간을 세 시대에 걸쳐 반복 배치하며 시각적 각운을 만든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회오리다.

3.

드 니로의 연기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내면적이다. 늙은 누들스의 눈에는 수십 년의 죄책감이 응결(凝結)되어 있다. 제임스 우즈가 연기하는 맥스는 그 대척점에서 야망과 배신을 번갈아 보여준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이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팬플루트의 애절한 선율은 과거를 낭만화하는 동시에, 폭력이 터질 때마다 그 낭만을 산산조각 낸다. 네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레오네는 침묵과 얼굴의 클로즈업에 오래 머문다.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 느림은 삶의 질감을 축적한다.

4.

워너 브러더스는 미국 개봉 당시 90분을 잘라내고 시간 순서대로 재편집했다. 레오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이 ‘예술적 반달리즘’은 영화를 평범한 갱스터물로 전락시켰다. 완전판(完全版)이 복원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원작자의 의도를 짓밟는 배급사의 횡포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플랫폼 시대, 알고리즘이 편집권을 쥐락펴락하는 지금, 레오네의 아편굴은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과연 온전한 기억인가, 누군가 잘라 붙인 환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