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이긴 자가 지는 법 — 7인의 사무라이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 1954
1. 영국 비평지 영국의 한 영화 평론가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1954) 결말을 이렇게 요약했다. “사무라이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 207분에 달하는 이 대서사시의 마지막 장면은 기묘하다. 빗속 혈전을 치러낸 생존 사무라이들이 무덤 앞에 서 있고, 그들이 목숨 걸어 지킨 농민들은 이미 모내기 노래를 부르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카메라는 천천히 상승한다. 노래 소리와 바람 소리만 남는다.
2. 영화의 전제는 단순하다. 도적떼에 시달리는 마을이 일곱 명의 떠돌이 사무라이를 고용해 방어전을 치른다. 보수는 쌀밥뿐. 시무라 타카시가 연기한 칸베이는 이 조건을 덤덤히 수락하는데, 그 이유를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한편 미후네 토시로가 맡은 키쿠치요는 사무라이 행세를 하지만 실은 농민 출신이다. 존재 자체가 계급의 허구(虛構)와 실재(實在)를 동시에 폭로한다. 구로사와는 멀티 카메라와 망원렌즈로 진흙과 비와 칼날이 뒤엉키는 전투를 찍었고, 이 시퀀스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재현 불가 영역으로 남는다. 기술적 성취는 명백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기술 바깥에 있다.
3.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한국의 ‘용역’이 떠오른다. 아파트 경비원, 학교 급식 노동자, 대형마트 캐셔. 그들은 우리의 일상을 지키지만, 정규직 전환 약속은 계약 갱신 때마다 휴지가 된다.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 뛰어들고,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지만, 이들의 처우 개선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늘 ‘계류 중’이다. 그들이 이겨도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그건 패배다. 칸베이의 마지막 독백 “결국 우리도 졌다”는 전국 시·군·구 노동지원센터 벽에 붙여놔야 할 문장 아닌가. 영화가 70년 전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이 통찰이 보편적임을 증명할 뿐 한국의 무죄를 입증하지 않는다.
4. 솔직히 말한다. 나는 평론가로서 ‘7인의 사무라이’를 명작이라고 쓰면서도, 한 번도 경비실에 설 음료수 한 병 갖다 놓은 적 없다. 스크린 앞에서는 성찰하고, 스크린 밖에서는 망각한다. 구로사와가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높이 들어 올린 건 어쩌면 관객을 향한 경고였는지 모른다. 모내기 노래 속 농민들, 그게 우리다. 누군가의 희생을 향유한 뒤 돌아서서 씨를 뿌리는 사람들. 화면 밖의 당신에게 묻는다. 오늘 누가 당신의 일상을 지켰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이름을 기억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