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피를 빨아먹는 것들에 대하여 — 시너스

「시너스」 (Sinners) · 라이언 쿠글러 (Ryan Coogler) · 2025

시너스 (2025) 이미지
「시너스」 (2025) 이미지 © TMDb

블루스가 무기가 되는 밤

[1] 어릴 적 외갓집에서 본 흑백TV 속 뱀파이어는 유럽 귀족이었다. 망토를 휘날리며 처녀의 목을 물고, 마늘과 십자가 앞에서 비명을 지르던 그 고전적 괴물. 오랜 타지 생활 끝에 돌아온 한국에서 라이언 쿠글러의 ‘시너스’를 보며, 나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이토록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에 멍해졌다. 1930년대 미시시피 델타, 짐 크로 법이 지배하던 미국 남부. 이 영화의 뱀파이어는 드라큘라 백작의 후예가 아니다. 착취(搾取)와 수탈(收奪), 흑인 공동체를 오랫동안 빨아먹어온 체제 그 자체의 형상화다.

한 몸에 깃든 두 개의 삶

[2] 마이클 B. 조던이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을 동시에 연기한다. 시카고 갱스터로 단련된 형과 전쟁의 상흔을 안은 동생. 《버라이어티》의 오언 글리버먼이 “이중 역할을 소화하는 민첩함이 놀랍다”고 평했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봤다. 조던은 두 캐릭터를 ‘구분’하는 데 힘을 쏟지 않는다. 오히려 둘 사이의 유사성—같은 고향, 같은 핏줄, 같은 공포—을 끌어안는다. 형제는 서로의 거울이자 그림자다. 쿠글러 감독이 카메라를 조던의 얼굴에 고정한 채 블루스 기타 소리를 길게 틀어주는 중반부 시퀀스에서, 영화는 장르의 틀을 넘어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 루트비히 고란손의 델타 블루스 스코어가 주술처럼 화면을 휘감을 때,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뱀파이어에 맞서는 ‘영적 무기’가 된다.

보여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포

[3] 쿠글러는 이 영화에서 초자연적 공포보다 역사적 공포를 먼저 깔아둔다. 주크 조인트(남부 흑인들의 술집 겸 공연장)의 후끈한 공기, 백인 보안관의 시선,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되는 밤거리. 뱀파이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관객은 이미 숨이 막힌다. 그래서 괴물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새로운 위협’이 아니라 ‘이미 있던 위협의 실체화’로 느껴진다. IMAX 65mm로 촬영된 미시시피의 습지와 안개, 저녁노을과 피. 촬영감독 오텀 두랄드 아르카파우의 화면은 촉각적이다. 13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쿠글러가 이 세계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집착은 이해가 간다. 그가 만든 1930년대는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되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피를 빠는 것들이 있다

[4]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공동체를 빨아먹는 존재들.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청년의 미래를 저당 잡는 대출 구조, 노동자의 시간을 갈아 넣고도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계약들,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존엄을 매일 조금씩 갉아먹는 언어와 시선. 이 영화의 뱀파이어는 마늘로 퇴치할 수 없다. 블루스로, 연대로, 저항으로만 맞설 수 있다. 쿠글러의 영화가 미국 남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이유다. 결국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는 피를 빠는 자와 빨리는 자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쪽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빨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