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해면이 어른을 비웃는 방식
「보글보글 스폰지밥 극장판」 (The SpongeBob SquarePants Movie) · 스티븐 힐렌버그 + 데릭 드라이먼 (Stephen Hillenburg & Derek Drymon) · 2004
이 글을 시작하려는데 또 해면 이야기를 해야 한다. 파인애플 집 안에서 스폰지밥이 출근 준비를 한다. 거울 앞에서 기합을 넣고, 오늘은 새 매장 지배인이 될 거라 되뇐다. 그 직후 어른 사회의 첫 관문에서 무력하게 퇴짜를 맞는다. 한 미국 평론가는 이 지점을 두고 “스폰지밥의 철학적 차원”을 운운했지만, 나는 또 속았다. 알고 보면 이건 승진 피라미드가 얼마나 우스운지 보여주는 어린이용 블랙코미디다.
영화는 넵튠 왕의 왕관 도난 사건을 구실로 비키니시티 바깥으로 로드무비를 밀어붙인다. 로드무비의 문법을 빌린 이 구성은 종종 코미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핑계로 쓰인다. 줄거리는 의도적으로 진부하다. 스폰지밥과 불가사리 패트릭은 스승을 구하려 셸시티로 향하고, 아이스크림에 취해 헛구역질을 하고, 청부살인자에게 쫓기다가 데이비드 해슬호프를 생체 보트로 삼아 탈출한다. 해외 비평가 하나는 이 기행을 두고 “계산된 무의미”라고 했다. 맞다. 어떤 장면은 아동용 심의를 비웃는 막장이고, 어떤 장면은 도발적으로 어리숙하다. 이 이중성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은 3D 주류 장편들보다 되레 위험하다.
제작진은 일부러 손그림 질감을 고집한다. 이는 2000년대 초반 CG 우상화에 대한 기습이자, 저예산 TV 만화가 극장판에서도 굳이 가난해 보이기를 선택한 결정이다. 아이들은 단순히 낄낄대겠지만, 어른들은 해슬호프가 실사로 등장해 자신을 구명정 삼아 수영하는 장면에서 90년대 텔레비전의 유령을 목격한다. 영화는 여기서 사회를 살짝 건드린다. 성숙함이 순수함을 지우는 절차라 믿는 세계에서, 스폰지밥은 차라리 ‘바보’로 남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그 선언을 몇 분간 곱씹다가 문득 내가 해면의 승진 실패에 과몰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건 애들 영화다. 그런데도 내가 여기서 자기계발서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셸시티로 끌려가도 할 말이 없는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