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문제아의 공식 — Morgan Wallen

「I’m The Problem」 · Morgan Wallen · Big Loud Records / Republic Records · 2025 · 스트리밍 ↗

I’m The Problem - Morgan Wallen 음반 표지
Morgan Wallen — 「I’m The Problem」 (2025) 표지 © iTunes / 레이블

크런치 기타 톤이 스피커를 때리는 순간, 음악 자체보다 먼저 들리는 게 있다. 바로 ‘씩 웃는 소리’다. Morgan Wallen의 새 앨범 〈I’m The Problem〉 타이틀 트랙은 정확히 그렇게 시작된다. 본인의 결함을 나열하다가, 후렴에서 죄책감을 고백하듯 부르는데 이게 참, 기막히게 스타디움형 떼창에 최적화되어 있다. 진심 어린 참회가 아니라 계산된 자기 신화화에 가깝다. 《버라이어티》의 크리스 윌먼이 이 앨범을 두고 “잠재적 약점을 시장성 있는 진정성으로 전환하는 영리한 수법”이라고 쓴 건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모건 월렌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가 점유한 위치가 흥미롭다. 팝 컨트리 역사상 이만큼 차트 지배와 비평적 무관심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아티스트가 또 있었나 싶어서다. 그의 앨범 〈Dangerous: The Double Album〉(2021)은 빌보드 200에서 10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건 1987년 휘트니 휴스턴의 〈Whitney〉 이후 처음이었다. 동시에 그는 인종차별 발언 영상 유출 이후 라디오 송출 금지, 레이블 계약 중단이라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 스캔들 직후 음반 판매량이 오히려 급증했다. 팬들에게 주류의 비난은 일종의 품질 보증 마크처럼 작동한 셈이다.

〈I’m The Problem〉은 바로 이 역설 위에 올라탄 앨범이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내가 문제야”라는 고백은 진정한 반성일 수도 있고, 악동 브랜딩일 수도 있다. 월렌은 둘 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듯이, 둘 다에 해당한다는 듯이 노래한다. 이 모호함이 그의 무기라면 무기다.

사운드를 들여다보면 프로듀서 조이 모이의 손길이 여전히 선명하다. 〈Dangerous〉를 역사적 성공으로 이끈 그 공식 — 밴조 아래 디스토션 파워 코드를 깔고, 월렌 특유의 걸쭉한 보컬에 어슬렁거림과 고통을 동시에 허락하는 방식 — 이 건재하다. 에릭 처치의 록 감성과 루크 콤스의 서민적 호소력 사이 어딘가. 내슈빌의 광택과 록 인접 거친 질감이 동거한다. 이걸 절충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전략적 포지셔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18곡, 러닝타임 1시간을 훌쩍 넘긴다. 스트리밍 시대의 관행이다. 많이 넣어야 많이 돌아가니까. 대신 중반부에 미드템포 발라드가 몰려 있어서 듣다 보면 곡이 서로 겹친다. ‘Forever Changed’와 ‘Learning The Hard Way’는 솔직히 구분이 안 된다. 라디오용 센티멘탈리즘의 표본처럼 들린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잠깐 딴생각을 했다. 예전에 라디오 작가를 할 때, 선곡표 짜면서 “이거 아까 곡이랑 거의 같은데요?” 했더니 PD가 “괜찮아, 틀어, 똑같은 게 좋은 거야”라고 했던 기억. 그때 나는 이해 못 했는데 지금은 조금 이해한다. 익숙함은 안전하고, 안전함은 판매로 이어지니까.

그래도 빛나는 순간은 있다. ‘Lie To Me Later’는 예상 외로 펑키한 리듬을 탄다. ‘Momma’s Kitchen’은 스트립백 어쿠스틱으로 월렌의 송라이팅 본능이 공식 너머로 드러난다. 무엇보다 ‘Ghost Of Who I Was’가 인상적이다. 진짜 자기 성찰의 기미가 보인다. 물론 그 직후 안전한 지대로 돌아가 버리지만, 그 순간만큼은 슬쩍 마음이 동했다. ‘One More Last Time’도 꽤 좋다. 순환하는 자기파괴에 대한 노래인데, 여기선 클리셰가 진심처럼 들린다. 진심이 클리셰인 건지, 클리셰가 진심인 건지 헷갈리는 묘한 경험이다.

월렌은 기술적으로 과소평가된 보컬리스트다. 많은 비평가들이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뉘앙스를 담을 수 있다. 가사가 그걸 요구하지 않을 때조차. 《버라이어티》의 윌먼은 그의 테너를 “멀릿 같다”고 표현했다. 벌스에서는 비즈니스, 코러스에서는 파티라는 뜻이다. 웃기면서 정확한 묘사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앨범은 회의론자를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월렌의 문화적 위치를 둘러싼 질문에 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상업적 컨트리 음반으로서? 무자비하게 유능하고, 때때로 영감이 있다. 이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가 청중을 외과 수술 같은 정밀함으로 이해한다는 것도.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에 “내가 문제야”라고 선언하는 건 어떤 의미를 갖는가. SNS 시대의 자기비하는 종종 역설적 자기홍보가 된다. “나 못생겼어”라고 올리면 “아니야 예뻐”라는 댓글이 달리는 구조. 월렌의 앨범 제목도 비슷한 메커니즘 아닐까. “내가 문제야”라고 먼저 말하면 누구도 그걸 무기로 쓸 수 없다. 선수를 치는 거다. 고백이 방어가 되고, 방어가 공격이 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정치인들도 비슷하지 않나. 스캔들이 터지면 먼저 “제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한다. 부족한 채로. 반성의 언어가 면죄부가 되는 시대. 월렌의 앨범은 그 시대정신을 깔끔하게 음반 한 장으로 압축했다.

물론 이건 내 해석일 뿐이다. 월렌 본인이 뭘 의도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그냥 히트곡 18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성공했다. 차트는 답할 테니까. 비평은 여전히 질문만 던지고.

문제는 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없애버릴 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