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짐승의 눈으로 본 인간, 그 비루한 능력주의 — 짐을 끄는 짐승들
「짐을 끄는 짐승들」 (Beasts of Burden: Animal and Disability Liberation) · 수나우라 테일러 / Sunaura Taylor · 옮긴이 송은주 · 오월의봄 · 2017
휠체어에 앉은 손이 도축장 울타리를 움켜쥔다. 철망 너머로 보이는 돼지들의 몸이 좁은 틀 안에 갇혀 꿈틀댄다. 손가락은 관절이 뒤틀려 있고, 돼지의 다리도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휘어 있다. 서로 다른 두 몸이 같은 논리 앞에 서 있다. 이 장면이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 전체를 관통한다.
테일러는 선천성 관절굽음증을 안고 태어난 예술가이자 활동가다. 그는 자신의 몸이 평생 ‘능력’의 잣대로 재단당해 온 경험에서 출발해 동물권과 장애학이라는 두 영역이 공유하는 억압의 문법을 추적한다. 이 책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동물을 착취해도 된다고 정당화하는 논리와 장애인을 배제해도 된다고 정당화하는 논리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뿌리를 테일러는 ‘에이블리즘(ableism)’, 즉 능력주의(能力主義)라 부른다. 이성적이고, 자율적이며, 생산적인 존재만이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는 근대 서구의 신화. 동물은 ‘본능에 지배당하고’, ‘언어가 없으며’, ‘이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착취해도 된다. 역사 속에서 장애인들 역시 정확히 같은 수사로 시설에 격리되고, 단종당하고, 살해당했다. 『가디언』의 한 평자가 지적했듯 테일러의 작업은 이 두 영역 사이에 누구도 제대로 그어본 적 없는 선을 긋는다.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대목은 언어에 대한 분석이다. ‘멍청하다(dumb)‘는 말 못 하는 동물에게서 왔다. ‘절름발이(lame)‘는 뒤뚱거리는 짐승의 걸음걸이를 흉내 낸다. 모욕의 언어가 동물 비유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은, 인간이 동물을 열등하게 규정하는 순간 이미 자기 몸의 일부도 열등하게 규정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테일러는 이 은유의 계보를 따라가며 종차별(種差別)과 장애차별이 언어의 지층 아래서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드러낸다.
더 급진적인 전환은 의존(依存)에 대한 사유에서 일어난다. 서구 자유주의는 자율과 독립을 최고선으로 삼아왔다.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는 존재는 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테일러는 묻는다. 진정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이 세상에 있는가. 우리 모두 음식과 돌봄과 타인의 노동에 의존해 살아가지 않는가. 그런데 왜 어떤 의존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다른 의존은 수치로 규정되는가. 독립이라는 환상은 사실 특권이다. 그 환상 밖에 있는 존재들—휠체어를 탄 인간, 케이지에 갇힌 닭—을 착취하거나 버려도 된다는 면죄부를 발급하는 특권.
테일러는 ‘크립(crip, 장애인을 뜻하는 비하어를 전유한 표현)’ 정치학을 제안한다. 취약성과 상호의존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연대(連帶)의 근거로 삼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동물권 운동에도, 장애권 운동에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비건 진영의 일부는 동물을 장애인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비인간화’라고 반발할 것이다. 장애권 진영의 일부는 동물과의 연대가 자신들의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흔든다고 느낄 것이다. 테일러는 이 긴장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긴장이야말로 각 운동이 자신의 전제를 점검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도착한 시점을 생각한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지하철을 멈추고, 그 멈춤이 시민들의 ‘불편’으로 번역되어 비난받던 시절. 공장식 축산의 폐해가 동물복지 논쟁을 넘어 기후위기와 감염병의 언어로 재구성되던 시절. 두 영역 모두에서 질문의 핵심은 같았다. 누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 누구의 불편이 문제로 규정되고, 누구의 고통은 비용으로 환산되는가. 테일러의 분석은 그 질문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해방(解放)은 나눌 수 없다는 것. 이 문장이 이 책의 결론이다. 한 집단의 자유가 다른 집단의 억압 위에 세워진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특권의 재배치일 뿐이다. 짐승으로 불린 모든 존재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정치를 다시 사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