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피라미드의 허전함 — 신 로지컬 씽킹
「신 로지컬 씽킹」 (New Logical Thinking (ニューロジカルシンキング)) · 모치즈키 안디 (望月安迪 / Andy Mochizuki) · 옮긴이 김윤경, 이준희 · 비즈니스북스 · 2020
1.
회의실의 스크린에 피라미드 한 장이 떠오른다. 맨 위에 결론이, 그 아래로 세 갈래 근거가 단정히 정렬되어 있다. MECE―상호 배타적이고 전체를 포괄하는―의 원칙에 따라 빈틈없이 짜인 구조다. 프레젠터는 자신만만하게 레이저 포인터를 움직이고, 청중은 고개를 끄덕인다.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마다 논리의 사슬은 더욱 촘촘해진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하다. 논리는 완벽한데 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발표가 끝나고 어색한 박수가 터지며 사람들은 흩어진다.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다.
모치즈키 안디의 『신 로지컬 씽킹』은 바로 이 허전함에서 출발한다.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이자 이후 기술 창업에 뛰어든 저자는, 컨설팅 산업이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로 수출해온 사고 도구들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앤드루 힐은 이 책이 “프레임워크 의존증”―복잡한 현실을 익숙한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만성적 습관―을 날카롭게 해부한다고 평했다. 구조가 우아할수록 정작 현실의 복잡함은 잘려나간다는 역설. 빈틈없는 분류가 오히려 새로운 기회와 위협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경고다.
2.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세 가지 축(軸)의 결합이다. 첫째, 가설(假說) 주도의 신속한 사고. 완벽한 분석을 끝낸 뒤 결론을 내리는 대신, 잠정적 결론을 먼저 세우고 검증하며 수정해가는 방식이다. 둘째, 반복적 테스트. 한 번의 발표로 승부를 보려 하지 말고 작은 가설을 여러 번 시험하며 시장과 조직의 반응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셋째, ‘논리적 공감’이다. 마지막이 가장 낯설면서도 핵심적이다.
논증이 형식상 타당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특정 청중의 맥락과 관심사, 언어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분석의 엄밀함을 버리지 않으면서 스토리의 옷을 입혀 전달하는 기술.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스토리 주도 논리’라 명명한 이 개념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기여다. 논리와 내러티브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분석 자체가 자연스러운 서사(敍事)를 생성하도록 설계하라는 주문이다.
물론 비판도 없지 않다. 저자가 바바라 민토의 피라미드 원칙을 다소 단순화해놓고 쓰러뜨린다는 지적, 실행 편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이 앞부분에 비해 성급하게 마무리된다는 불만.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경영서 대부분이 유행하는 방법론을 좇느라 가볍기만 한 시절에, 전통에 대한 경의와 그 한계에 대한 자각을 동시에 유지하려 애쓰는 책은 드물다. 그 긴장이 이 책에 무게를 준다. 일본과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병치하며 동서양 비즈니스 철학을 잇고자 하는 저자의 야심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 사례가 많아 서양 독자에겐 낯설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역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함의 이점이 된다. 논리의 완성이 곧 설득(說得)의 완성이 아니라는 명제만큼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유효하다.
3.
솔직히 말하면, 경영서에 기대를 건 적이 별로 없다. 손자병법 한 구절 끌어다 처세의 지혜를 가르친다며 폼 잡는 책들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괜히 찔리거나, 지면 절반이 자기 회사 광고인 책들도 숱하다. 그런데 이 책은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상대를 이해시키려면 먼저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던 진리를 상기시켜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회의실의 피라미드 앞에서 청중의 고개가 끄덕여지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가. 논리는 정연했는데 왜 결재가 나지 않았는지, 왜 프로젝트가 표류했는지 의아했던 순간이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볼 가치가 있다. 논리의 칼날을 세우되 공감의 손잡이를 잃지 않는 일. 그것이 설득이라면, 설득은 언제나 상대방을 향해 열린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