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고통과 괴로움 사이, 정신과 의사가 걸어간 명상의 길 —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What the Buddha Taught Me About Letting Go) · 토니 페르난도 (Tony Fernando) · 옮긴이 강정선 · 윌마 · 2022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불안장애 인구가 3억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25%가 급증한 수치다. 명상 앱 시장은 같은 기간 연평균 14% 성장률을 기록했다.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런데 소비한다고 평화가 오는가.
토니 페르난도의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는 이 질문 앞에 멈춰 선다. 저자는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는 정신과 의사이며 동시에 25년간 테라바다 전통의 명상을 수행해온 수행자다. 두 정체성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글에서 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스리랑카에서 불교 집안에 태어나 자란 저자는 서양 의학을 공부하며 한동안 명상에서 멀어졌다. 환자를 치료하고 논문을 쓰며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붓다의 가르침은 유년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 마주한 고통의 풍경이 그를 다시 명상의 자리로 이끌었다.
이 책의 핵심 구분은 단순하다.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은 다르다. 고통은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몸이 아프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일은 살아 있는 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괴로움은 다르다. 괴로움은 그 고통에 저항하고, 덧붙이고, 반추하는 데서 생겨난다. 붓다가 말한 ‘두칸’(苦, dukkha)의 상당 부분은 사실 이 괴로움, 즉 고통 위에 우리가 쌓아 올린 이차적 구조물이다.
이 통찰은 현대 심리학에서도 낯설지 않다. 수용전념치료(ACT)나 인지행동치료가 말하는 ‘경험 회피’의 문제와 정확히 겹친다. 저자는 이 접점을 꼼꼼히 짚어낸다. 불교의 ‘우빠다나’(집착)와 심리학의 ‘애착 이론’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불교의 무상(無常) 관념이 상실 심리학의 어떤 지점과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한 이론 대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임상 현장의 실제 사례(익명화된)를 통해 관념이 삶으로 내려앉는 순간을 포착한다.
가장 밀도 높은 장은 죽음과 상실을 다룬 부분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말기 환자와 유족을 돌보아왔다. 그 경험이 글의 무게를 다르게 만든다. 그는 상실의 고통을 축소하지 않는다. “다 흘러간다”는 식의 섣부른 위로도 건네지 않는다. 대신 고통을 ‘잡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자세, 붓다가 말한 ‘중도’(中道)의 감각이 어떻게 슬픔을 견디게 하는지를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장들에서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유기적 통합”을 발견했다고 평했다. 맞는 말이다. 저자의 글에서 불교 철학은 장식이 아니라 구조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미덕은 정직함이다. 그는 자신 역시 집착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직업적 성공에, 환자의 치료 결과에, 타인의 인정에 매달렸던 시간들. 그 취약함의 고백이 처방에 신뢰를 부여한다. 스스로 해내지 못한 일을 권하는 멘토는 의심스럽기 마련이다. 저자는 ‘아직도 연습 중’이라는 자세를 끝까지 유지한다.
물론 한계도 있다. 불교 철학의 형이상학적 층위를 기대하는 독자에겐 이 책이 다소 얕게 느껴질 수 있다. 경전 해석의 깊이나 명상 수행의 세밀한 단계를 원한다면 다른 책을 찾아야 한다. 저자의 목표는 전문적 불교 입문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마음의 기술을 제안하는 데 있다.
마음챙김 산업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불교의 윤리적·형이상학적 기반을 걷어내고 ‘스트레스 해소 기법’만 남기는 건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 비판을 의식한다. 그래서 ‘놓아버림’을 단지 기분 좋아지는 방법이 아니라 윤리적 삶, 타인에 대한 연민과 연결된 실천으로 제시한다. 더 편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명상한다는 관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힐링’이라는 단어는 닳을 대로 닳았다. 서점에는 명상과 마음챙김을 다룬 책이 넘쳐난다. 그중 상당수는 진지한 수행 없이 유행을 좇는 상품에 가깝다. 토니 페르난도의 책은 그 무리와 결이 다르다. 25년간 환자를 만나고 동시에 25년간 명상해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현대인의 불안은 집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성취에, 관계에, 건강에, 미래에 매달리고 그것이 영원하리라 믿으려 한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사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은 두렵다. 저자가 제안하는 ‘놓아버림’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붙잡되 손아귀에 힘을 빼는 감각이다. 그 감각을 익히는 데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된다.
멘탈헬스 위기가 팬데믹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약물과 상담만으로 감당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오래된 지혜일지 모른다. 2500년 전 붓다가 말한 것을 21세기의 정신과 의사가 다시 풀어낸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괴로움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