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껍데기를 깨는 자만이 태어난다 — 데미안
「데미안」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 옮긴이 전영애 · 민음사 · 1919
1919년, 독일은 폐허 위에 서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가 지나간 자리, 빌헬름 제국의 권위는 먼지가 됐다. 베르사유 조약의 굴욕 속에서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의 가치를 믿을 수 없게 됐다. 그해, 에밀 싱클레어라는 무명 작가가 쓴 『데미안』이 문단을 흔들었다. 폰타네 상을 수상한 뒤 저자가 헤르만 헤세임이 밝혀지면서 논쟁은 더 깊어졌다. 47세 기성 작가가 왜 청춘의 목소리로 가장했는가.
어둠을 품어야 빛이 된다
소설은 열 살 소년 싱클레어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에게 세상은 둘로 나뉜다. 아버지의 서재, 어머니의 기도가 있는 ‘빛의 세계’. 그리고 골목의 소문, 하인들의 거친 언어가 속하는 ‘어둠의 세계’. 싱클레어는 빛 속에 머무르려 하지만, 불량배 크로머에게 협박당하면서 처음으로 어둠에 발을 담근다.
그를 구원하는 것은 막스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성서의 카인을 다시 읽는다. 살인자가 아니라 ‘표지를 받은 자’, 자기 길을 가야 해서 군중을 두렵게 한 존재로. 《뉴욕타임스》의 초기 서평은 이 소설이 “사실주의와 상징의 층위를 동시에 작동시킨다”고 짚었다. 정확한 지적이다. 데미안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 싱클레어 내면 가능성의 육화(肉化)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은 헤세 사유의 핵심을 응축한다. 신과 악마, 빛과 어둠을 하나로 품은 존재. 부르주아 기독교의 선악 이분법을 거부하고, 인간 내면의 모순까지 긍정해야 비로소 자아(自我)가 탄생한다는 선언이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과 융 심리학의 그림자 개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헤세는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했다.
지금, 누가 알을 깨고 있는가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는 이 책이 “특정한 종류의 젊은이에게 줄어들지 않는 힘으로 말을 걸 것”이라 예견했다. 100년 전 패전국 독일 청년의 정신적 공허가 오늘날 전혀 다른 땅에서도 읽히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붕괴한 자리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청년의 고독은 국경을 넘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라는 작중 문장은 이제 티셔츠에도 박힌다. 그러나 원래 맥락은 더 불온하다. 깨야 할 껍데기란 부모의 가치관, 사회의 통념,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쌓아 올린 편안한 정체성이다. 부수지 않으면 날 수 없다. 헤세가 필명 뒤에 숨어 이 책을 썼던 것 자체가 껍데기를 깨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알 속에 있는가. 깨부수려 하는가, 아니면 껍데기를 두드리는 소리조차 두려워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