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빛의 입자이자 파동인 것들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 옮긴이 민은영 · 문학동네 · 2008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표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2008)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물리학 교사의 마지막 수업

형광등 아래 교탁에 선 물리학 교사가 학생들에게 빛의 이중성을 설명한다.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고, 어느 한쪽만으로는 빛의 본성을 규명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고, 입술은 교과서의 문장을 읊조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다른 문장들이 맴돈다—아내가 남기고 간 쪽지의 문장들, 변호사가 보내온 서류의 문장들, 대답하지 못한 아들의 질문들.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표제작은 이 물리학적 비유로 시작해서, 결국 한 남자의 삶 전체가 입자이면서 파동이었음을—다시 말해 무엇이었는지 단언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체호프의 후예들이 사는 곳

미국 단편소설의 계보에서 레이먼드 카버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쓸데없는 것을 전부 걷어낸 뒤에 남는 앙상한 뼈대만으로 인간의 패배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하나의 유파가 되었다. 『커커스 리뷰』가 포터를 “카버의 미니멀리즘적 정밀함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만의 온기와 구체성을 유지하는” 작가라고 평한 것은 이 계보 안에서 그의 좌표를 짚으려는 시도다.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출신이라는 이력이 더해지면 그림은 완성된다—미국 리얼리즘 소설의 정통 교육 과정을 밟은 젊은 작가가 선배들의 영토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

그 영토는 교외(郊外)다. 2층짜리 단독주택들이 늘어선 거리, 고등학교 주차장, 병원 대기실. 포터의 인물들은 이 풍경 안에서 살아가되, 풍경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자녀를 실패시킨 아버지들이고, 아내에게서 멀어진 남편들이며, 성인의 문턱에 선 채로 도약할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다. 일견 낯익은 배치이지만, 포터가 이 익숙한 재료로 빚어내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아버지의 죽음, 멕시코행 버스

단편 「아술」에서 한 청년이 죽어가는 아버지를 데리고 멕시코로 간다. 실험적 치료를 받으려는 목적이지만, 그것이 진짜 목적인지는 둘 다 알지 못한다. 먼지 날리는 국경 도시의 싸구려 모텔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평생 나누지 못한 대화를 나눈다—정확히 말하면,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치료는 실패하고 아버지는 죽을 것이며, 아들은 하지 못한 말들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포터는 이 과정을 과잉 없이, 거의 보고서처럼 건조하게 서술하는데, 바로 그 건조함이 슬픔을 증폭시킨다.

「폭풍」에서는 허리케인이 해안에 접근하는 동안 한 부부가 위태로운 화해를 시도한다. 외부의 재난과 내부의 균열이 병치(竝置)되지만, 포터는 둘 사이에 인과관계를 부여하지 않는다. 폭풍이 지나가도 부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폭풍이 부부를 갈라놓지도 않을 것이다. 자연재해와 인간관계는 그저 같은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사건일 뿐이다. 이 무심함이야말로 포터 소설의 핵심적 윤리다—삶은 은유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 거부 속에서 어떤 진실이 빛난다.

코요테가 나타나는 밤

「코요테」라는 단편에서 십대 소년이 밤의 들판에서 야생 코요테와 마주친다. 잠깐의 조우에 불과하지만, 소년은 그 순간에 문명과 야성 사이의 경계를, 집의 안온함과 밖의 위험 사이의 경계를 감각한다. 포터는 이 경험을 성장의 결정적 계기로 과장하지 않는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고, 부모와 저녁을 먹고, 평범한 다음 날을 맞이한다. 코요테와의 만남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그러나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순간은 소년의 안에 영원히 남는다.

이것이 포터가 취급(取扱)하는 순간들의 특징이다. 삶을 송두리째 뒤집는 대사건이 아니라, 뒤집힐 뻔했으나 뒤집히지 않은 순간들. 깨달음이 왔으나 너무 늦게 와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순간들. 그의 인물들은 “결정적 전환점을 놓쳐버린” 사람들이며, “자신이 상상했던 삶 옆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단조로움이라는 미덕, 혹은 한계

비평가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약점을 지적했다. 정서적 음역(音域)이 좁다는 것. 아홉 편의 단편이 비슷한 계층, 비슷한 고뇌, 비슷한 우울을 공유한다는 것. 『뉴욕타임스 북리뷰』의 지적대로 “더 넓은 범위가 필요하다”는 진단은 일리가 있다. 중산층 백인 남성의 심리적 풍경만으로 한 권을 채우는 것은 자칫 동어반복이 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단조로움을 다르게 읽고 싶다. 포터가 그리는 세계는 실제로 단조롭다—그것이 미국 교외라는 공간의 본질이다. 모든 집이 비슷하게 생겼고, 모든 가족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모든 실패가 비슷한 패턴을 따른다. 이 균질성(均質性) 속에서 개별 삶의 고유함을 포착하는 것이 포터의 과제이고, 그는 그 과제를 대체로 완수한다.

실패한 남자들의 초상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포터의 관심은 집요하다. 그의 아버지들은 선의를 가졌으나 표현할 줄 모르고, 사랑하되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며, 가장(家長)의 권위를 유지하려 애쓰다가 정작 가족과의 접점을 모두 잃어버린다. 「구멍」에서 한 남자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하는 것은 물건들이 아니라 부재(不在)다—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는 사실, 대화가 없었다는 사실, 서로를 몰랐다는 사실.

이러한 부성(父性)의 실패는 미국 소설의 오래된 주제다. 아서 밀러의 윌리 로먼에서 존 업다이크의 해리 앵스트롬까지, 아버지의 무능과 그 무능이 낳는 비극은 미국 중산층 서사의 중심 축이었다. 포터는 이 계보를 잇되, 드라마틱한 파국보다는 조용한 침식을 선택한다. 그의 아버지들은 폭발하지 않는다—그저 스러진다.

조용한 책의 조용한 힘

『가디언』의 평이 정확히 짚었듯, 포터의 “조용함은 조심스러움의 산물이 아니라 세심한 주의의 산물”이다. 그는 침묵과 암시를 신뢰하고, 설명을 경계한다. 독자에게 결론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한다.

이 신뢰가 때로는 과도해 보일 수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어떤 인물들은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포터의 의도라면—삶이란 끝나지 않은 채로 끝나는 것이고, 인간이란 완성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라면—이 미완의 감각은 오히려 정직한 것이다.

빛이 입자이자 파동이듯

표제작으로 돌아가자. 물리학 교사는 빛의 이중성을 설명하면서, 어쩌면 자신의 삶도 그런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좋은 남편이자 나쁜 남편, 헌신적인 아버지이자 부재한 아버지, 성공한 교사이자 실패한 인간. 양자역학의 원리대로, 무엇인지 관측하는 순간 다른 한쪽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관측하기 전까지, 모든 가능성은 공존한다.

포터의 소설을 읽는 경험도 이와 유사하다. 문장들은 명확하되 의미는 중첩되어 있고, 사건은 단순하되 해석은 복잡하다. 이 중첩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실패를, 자신이 놓쳐버린 전환점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불편한 발견이지만, 포터는 그 불편함을 부드럽게 제시한다.

결국 이 데뷔작이 보여주는 것은 역설(逆說)이다. 가장 평범한 풍경에서 가장 깊은 비극이 자라나고, 가장 조용한 목소리가 가장 오래 남으며, 가장 작은 순간들이 가장 큰 삶을 결정한다. 실패한 삶들에 대한 이 정밀한 기록이야말로 어쩌면 유일하게 성공적인 문학적 성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