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스토너, 절판 뒤에 찾아온 문장들
「스토너」 (Stoner) · 존 윌리엄스 (John Williams) · 옮긴이 김승욱 · 알에이치코리아(RHK) · 1965
팀 크라이더는 《스토너》를 두고 “극적 관례의 잣대로 보자면 이 소설은 성립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썼다. 실제로 존 윌리엄스의 이 소설은 1965년에 나와 얼마 팔리지 않았고, 절판되었다. 윌리엄스는 1994년에 죽었으며, 자기 책이 유럽과 미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가 남긴 것은 미주리 농가 출신 소년이 문학에 눈뜨고, 교수가 되고, 불행한 결혼을 견디고, 단 한 번 사랑하고, 죽는 서사다. 요약으로는 사람을 붙잡을 구석이 없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반세기 뒤의 독자를 다시 찾아왔다.
윌리엄스의 문장은 과잉을 거부한다. 어떤 문장도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낱말 하나가 제자리에 놓인 듯 움직인다. 이 절제는 스토너의 성질을 닮았다. 그는 말수가 적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응시한다. 아내 에디트와의 결혼은 멜로드라마 없이 서술된다. 두 사람은 수십 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도 끝내 서로에게 낯선 존재로 남는다. 그 불편은 요란하게 터지지 않고 오래 쌓인다. 하지만 소설은 불행의 구경거리로 떨어지지 않는다. 캐서린과 나눈 짧은 연애는 그가 빼앗긴 모든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부드러움으로 적혀 있다. 독자의 마음에 남는 것은 실패의 합계가 아니라, 거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위해 하루하루 강의실로 나간 끈기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크리스천 로렌첸은 이 문체를 플로베르적 통제에 가깝다고 평했다. 그는 이 소설의 재평가가 책 자체만큼이나 우리 시대의 불안을 비춘다고도 지적했다. 성취와 의미에 대한 강박 속에서 조용한 패배를 견디는 인물이 위로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 말은 타당하다. 다만 이 소설이 반세기 만의 교정된 평가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소음과 산만함의 시대에, 성취가 아니라 주의에서 의미를 찾는 삶이 어떤 모양인지를 보여주는 글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손에 들고 첫 장을 넘겼다면, 서두르지 말길 바란다. 스토너가 문학을 삶의 도피가 아니라 삶에 더 깊이 머무는 길로 받아들였듯, 이 소설의 문장은 당신이 흘려보낸 나날의 무늬를 되돌려준다. 나는 그 무늬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 이 책을 또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