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동정이 아니라 조바심이었다

「초조한 마음」 (Ungeduld des Herzens (Beware of Pity)) ·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 옮긴이 이유정 · 문학동네 · 1939

지난주 저녁, 지하철역 계단에서 한 노인이 트렁크를 끌며 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반대쪽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행동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가슴을 두드린 것은 미안함이 아니라, 그 장면을 하루 일과에서 빨리 지워버리고 싶다는 조바심이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장편소설 『초조한 마음』은 바로 그 감정의 해부도다. 1939년 망명지에서 나온 이 소설은 작가가 남긴 유일한 장편이다. 무대는 1차 세계대전 직전 헝가리 변경의 수비대 마을이다. 젊은 기병 장교 안톤 호프밀러는 부유한 케케스팔바 가문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집주인의 딸 에디트에게 춤을 청한다. 그는 그녀가 허리 아래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실수는 사과로 이어지고, 사과는 반복되는 방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방문은 사랑으로 읽힌다. 단 한 번의 어긋난 친절이 한 여자의 죽음과 한 가문의 몰락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25년 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젊은 날의 실수를 고백하는 액자 구조로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는 처음부터 이 이야기가 죄를 지은 사람의 자기 변호임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이 이야기를 더 무겁게 만든다.

츠바이크가 이 서사를 밀고 가는 힘은 단순하다. 연민은 두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는 상대의 고통을 끝까지 나눠 지려는 연민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통을 보는 내가 괴로우니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이다. 소설은 후자를 가리켜 마음의 조바심이라 부른다. 호프밀러의 친절은 가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결단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는 에디트 앞에서 약혼을 약속하고, 장교단 앞에서는 그 약속을 부인한다. 그를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 서술이 오히려 무섭다. 악인은 멀리할 수 있지만, 선한 의도와 약한 의지의 조합은 누구 안에나 있다. 한 해외 비평가는 이 소설을 두고 그리스 비극처럼 앞으로만 나아간다고 평했다. 정확한 말이다. 주인공의 도망이 비극의 추진력이다. 에디트는 병을 앓는 불쌍한 인물이 아니라, 상대의 망설임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인물이다. 그녀가 원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에디트의 아버지는 딸의 회복에 목숨을 걸다시피 매달리고, 가족 주치의 콘도어 박사는 연민이 의지와 결합할 때만 구원이 된다는 쪽을 대표한다. 호프밀러는 그 사이에서 점점 더 깊이 얽힌다. 받아들이지도, 거절하지도 못한 채.

이 소설이 오늘 한국에서 다시 읽히는 이유는 제국의 저문 풍경 때문만이 아니다. 장교단의 연회, 귀족 저택의 무도회, 계급의 예법은 1914년의 사회가 이미 몰락을 예고하는 순간을 정밀하게 그린다. 츠바이크는 그 세계를 망명지에서 돌아본다. 그러나 소설의 무서움은 시대를 넘어선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아픔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병명이 붙은 기사를 스크롤로 넘기고, 이웃의 투병 소식에 좋아요를 누른다. 재난 앞에서는 온라인 기부 버튼을 누르고 잊는다. 그 마음은 연민이 아니라 그 화면에서 빨리 손을 떼고 싶다는 조바심일 가능성이 크다. 에디트는 호프밀러에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원한 것은 단 하나,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감정이 머물지 않고 피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연민이 아니라 잔인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