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소토자키 하루오 감독께 —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 편 제1장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 편 제1장」 (劇場版「鬼滅の刃」無限城編 第一章 猗窩座再来) · 소토자키 하루오 (Haruo Sotozaki) · 2025
완결이란 언제 비로소 완결인가. 끝맺음을 보여주는 순간인가, 아니면 끝을 향해 치닫는 속도 자체인가. 편지를 쓰는 나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당신의 작품 앞에 섰다. ‘무한성 편 제1장’은 완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고 나서 나는 무언가가 완결된 느낌을 받았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평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책을 더 많이 읽었고, 실사 영화를 더 자주 봤다.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다소 겸연쩍은 심정이었다. 귀멸의 칼날이라는 거대한 프랜차이즈 앞에서 나는 문외한에 가깝다. 무겐열차 편이 세계 극장가를 뒤흔들 때, 나는 그 흥행 기록을 숫자로만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무한성이라는 공간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내가 알던 영화 문법이 무용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내 한계의 고백이다.
미국의 한 평론가가 이 작품의 공간을 “M.C. 에셔의 미로”에 비유했다. 적확한 묘사다. 무한성은 그저 배경이 아니다. 중력이 농담이 되고, 계단이 천장이 되며, 방이 스스로 호흡하듯 움직인다. 무잔이라는 악의 심리가 건축물로 구현된 셈인데, 당신은 이 불가능한 공간을 단순한 스펙터클로 소비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캐릭터들이 그 안에서 추락하고, 발버둥치고, 서로를 놓치는 장면들 속에서 무한성은 하나의 인격체처럼 작동한다. 공간이 인물을 지배한다. 물리 법칙의 전복(顚覆)이 곧 심리적 불안의 은유가 된다.
이 작품에서 나를 가장 오래 붙든 것은 하시라들의 개별 전투였다. 탄지로의 서사는 여전히 축이지만, 이번 장에서 하시라들은 단순한 조력자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각자의 전투가 하나의 독립된 비극으로 펼쳐진다. 미츠리와 오바나이 사이에 말해지지 않는 것들, 사네미의 광기 어린 분노. 당신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시간만 허락하면서도 그 안에 서사의 밀도를 응축했다. 나는 사네미가 상현의 일과 대치하는 장면에서 숨을 참았다. 내가 이 캐릭터를 TV판에서 충분히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의 절박함은 이해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종류였다.
아카자의 재등장 역시 인상적이다. 무겐열차에서 렌고쿠를 쓰러뜨린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단순한 악당의 귀환을 예상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의 집착, 그 기이한 철학적 강박을 조금 더 파고들었다. 강함에 대한 그의 갈구는 단지 전투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 증명의 문제이며, 어쩌면 자기혐오의 다른 이름이다. 악역에게 내면을 부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객이 그를 이해하게 되면 증오의 카타르시스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 위험을 감수했다. 나는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해야 한다. 내가 이 작품에 지나치게 호의적인 것인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무지가 오히려 경탄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가능한 일이다. 낯선 것 앞에서 인간은 쉽게 압도된다. 그러나 기술적 성취를 기술적 성취로 인정하는 것은 무지와 다른 문제다. 유포테이블이 쌓아온 것들, 2D 캐릭터와 3D 환경의 결합, 그 경계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매끄러움, 물의 호흡이 스크린 위에서 푸른 붓질처럼 흩어지는 장면들. 이것은 숙련의 결과(結果)이고 축적의 증거다.
물론 당신도 알 것이다. 이 영화가 완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제1장이라는 명칭이 이미 그것을 선언한다. 전투가 한창인 지점에서 영화는 멈춘다. 관객은 다음 편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것은 연속물(連續物)의 숙명이다. 그러나 극장이라는 공간은 완결을 전제로 한 곳이다. 집에서 TV 시리즈를 보며 다음 회를 기다리는 것과, 극장에서 2시간의 감정적 여정을 마친 뒤 미완의 채로 퇴장하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나는 이 구조적 긴장이 작품의 약점인지 특성인지 판단하지 못하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감독님, 나는 귀멸의 칼날 시리즈 전체를 통달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작품에 대해 나보다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무지한 눈이 다른 것을 보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가 프랜차이즈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 무한성의 계단이 뒤집힐 때, 사네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질 때, 아카자가 자신의 과거를 응시할 때, 나는 그저 하나의 작품 앞에 있었다. 연속물인데도 연속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역설(逆說)이야말로 당신이 성취한 것이 아닌가.
영화가 완결되지 않았으므로 이 작품은 실패한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완결 그 자체가 이 작품의 완결이다. 당신은 끝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을 끝 안에 머무르게 했다. 우리는 아직 무한성 안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미완의 경의를 담아,
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