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핑크빛 모형에 아로새긴 유럽의 사망선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 2014
손톱만 한 산정 호텔 모형을 카메라가 비스듬히 훑을 때, 그 인위적인 겉면이 어째서 무너진 유럽의 파편으로 번지는가. 이 질문 하나가 웨스 앤더슨의 세계를 관통한다.
표면(表面)은 이면(裏面)의 봉합이 아니라 폭로다
주브로카라는 가상의 공화국, 세 개의 화면비가 저마다 시간을 재단하는 액자 구조는 이 영화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님을 예고한다. 앤더슨은 핑크색 외벽과 정확한 대칭, 미니어처로 로비를 짓는다. 이 세계는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불안하다. 구스타브 H.는 자줏빛 제복과 과도한 경어를 앞세운 컨시어지다. 노년의 부호들이 그를 찾는 것은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그가 몰락하는 예의의 마지막 집행자이기 때문이다. 이민자 출신 로비보이 제로와의 관계는 그 인물을 우스꽝스러운 멋쟁이에서 불완전한 보호자로 바꾼다. 앤더슨의 카메라는 이 두 사람의 침묵을 비싼 세트장 속에서도 제법 오래 응시한다.
예의(禮儀)가 저항(抵抗)이 되는 순간
1930년대 주브로카에 검은 제복의 파시즘이 도래하면서 영화의 균형은 깨진다. 유산 분쟁, 도난당한 그림, 감옥 탈출이 19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의 속도로 질주한다. 스키 추격과 수도원 절벽 대치가 장난감 병정처럼 펼쳐지지만, 그 유희의 배후에는 검은 제복의 그림자가 한시도 걷히지 않는다. 구스타브가 그 와중에도 지키는 의례적인 친절은 우아함이라기보다 폭력에 대한 완강한 거부다. 한 외국 비평가는 이 영화를 두고 한 번도 정확히 존재한 적 없는 유럽을 위한 진혼곡이라 불렀다. 동의한다. 앤더슨은 웃음의 속도를 높일수록 그 세계의 종말을 가까이 끌어온다.
유산(遺産)과 상실(喪失)은 현재형이다
영화의 시간은 현재의 묘지에서 시작해 낡은 호텔의 기억, 1930년대의 전성기로 거꾸로 감긴다. 화면비가 좁아지고 색이 짙어질수록 관객은 이미 사라진 세계를 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기억을 전하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불완전하게, 그러나 사랑으로 이어 붙인다. 이 구조는 지금의 정치적 망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검은 제복의 향수와 극단의 언어가 공공연해지는 시대에, 몰락하는 호텔의 예의는 낡은 유산이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소수자의 생존과 이민자의 서사가 다시금 위협받는 장면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지금, 이 영화는 문명의 우아함이 폭력 앞에서 얼마나 빨리 유리처럼 깨지는지를 보여 준다.
우아함은 사치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바리케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