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데 파올리스 감독께 — 행복의 계곡

「행복의 계곡」 (La valle dei sorrisi) · 로베르토 데 파올리스 (Roberto De Paolis) · 2025

행복의 계곡 (2025) 이미지
「행복의 계곡」 (2025) 이미지 © TMDb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길, 마테오의 차창 너머로 알프스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있어요. 마을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뛰어놀고,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고, 누군가는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요.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당신이 유토피아 영화의 문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느꼈어요. 동시에 프레임 구석에 불안의 씨앗을 심어두셨다는 것도요.

《베네치아에서 상영된 이 영화가 포크 호러처럼 보이지만 훨씬 섬세한 의도를 품었다》고 《버라이어티》의 가이 로지가 썼더군요. 저도 동의해요. 당신은 초자연과 심리,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두셨어요. 소년의 포옹이 정말로 고통을 흡수하는 건지, 마을 사람들의 집단 착각인지. 그 모호함이 이 영화의 알레고리를 강화해요. 공동체가 가장 취약한 구성원을 희생(犧牲)시켜 평화를 유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게 만드니까요.

저는 당신의 전작 ‘퓨어 하츠’와 ‘프린세스’에서 주변부 청춘을 다루던 시선을 기억해요. 이번에는 그 시선이 한 공동체 전체를 향했어요. 개인적 악인은 없어요. 대신 선의(善意)를 확신하면서 착취에 참여하는 시스템이 있어요.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소년을 사랑해요. 진심으로 그를 돌본다고 믿어요. 그러면서 그의 어린 시절을 자신들의 정서적 편의를 위해 소비하죠.

남티롤의 산맥이 점점 감옥처럼 느껴지는 촬영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름다움이 억압으로 변하는 그 전환. 3막의 해결이 다소 급하게 느껴졌다는 점만 아쉬워요. 하지만 당신이 구축한 도덕적 미로를 생각하면, 출구를 찾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 자체가 이 영화의 질문이었을 테니까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돌봄 노동자들, 감정 노동을 떠맡은 이들이 어떤 처우를 받는지 생각하게 돼요. 집단이 지정한 누군가가 트라우마를 짊어지는 구조. 우리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소비하고 있진 않은지. ‘행복의 계곡’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행복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고,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