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댄 트랙텐버그 감독께 — 프레데터: 배드랜드
「프레데터: 배드랜드」 (Predator: Badlands) · 댄 트랙텐버그 (Dan Trachtenberg) · 2025
2011년, 당신은 비디오 게임 ‘포탈’을 원작으로 한 7분짜리 팬 필름을 인터넷에 올렸다. 아무런 제작비 지원 없이, 순전히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그것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을 때, 헐리우드는 비로소 당신의 이름을 적어두기 시작했다. 팬 필름 출신 감독이 ‘10 클로버필드 레인’으로 장편 데뷔를 하고, ‘프레이’로 낡은 프랜차이즈를 되살리더니, 이제 ‘프레데터: 배드랜드’로 시리즈의 문법 자체를 해체하려 한다.
솔직히 말하겠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했다. 37년간 이 시리즈는 한 가지 공식을 지켜왔다. 인간이 도망가고, 괴물이 쫓는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정글에서 땀을 흘리며 싸우던 그때부터. 그 공포의 시점이 바뀌면 어떻게 되는가. 괴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하면, 공포 대신 무엇이 남는가.
당신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공감이다.
버라이어티의 피터 드브루지는 당신의 영화를 “이 시리즈에서 가장 철학적으로 풍부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과장이 아니다. 추방당한 어린 프레데터와 고장 난 안드로이드의 동행은 기묘한 버디 무비의 형식을 띠지만, 그 이면에는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깔려 있다. 자신의 종족에게 버림받은 사냥꾼이 무엇을 사냥할 수 있는가. 프로그래밍을 거부한 기계가 무엇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가. 두 존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안드로이드 캐릭터가 영화의 비밀 열쇠다. 실용적 특수분장과 디지털 효과의 결합으로 구현된 이 존재는 자신의 프로그래밍에 의문을 품는다.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어졌으나 명령을 거부하는 기계. 전사가 되도록 길러졌으나 전사의 규범을 위반한 프레데터. 둘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거기서 나오는 감정의 울림은 내장과 척추가 뽑히는 장면들 사이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프레데터 모행성을 그리는 방식은 놀랍다. 영화의 첫 번째 막 전체가 야우자 클랜의 세계에서 펼쳐지는데, 영어 대사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의식과 권력 구조, 주인공의 금기 위반과 추방까지, 모든 것이 화면 안의 제스처와 시선으로만 전달된다. 이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다. 관객에게 친절하게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직접 해석하고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배드랜드’라는 제목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선다. 추방자들이 방황하는 척박한 땅이자, 기존의 질서와 의미가 무너진 자리다. 그 황무지에서 두 존재는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간다. 전사의 규범도, 기계의 명령도 아닌, 그들 자신만의 목적을. 촬영감독 제프 커터는 이 외계의 풍경을 마치 고전 서부극의 대지처럼 담아낸다. 텍스처가 살아 있고, 숨결이 느껴진다. 사라 샤크너의 음악은 ‘프레이’의 연장선에서 외계의 의식적 선율을 덧입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소리를 들려준다.
물론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3막의 해결이 다소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느린 호흡을 견디지 못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흠결로 이 영화의 성취를 가리기는 어렵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프랜차이즈의 공식을 거스르는 것이 두렵지 않았는가. 괴물에게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팬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스튜디오의 압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 길을 선택했다.
아마도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공포는 괴물의 외형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와 다르다고 믿었던 존재가 사실은 우리와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때 진정한 불안이 시작된다는 것을. 당신의 영화는 그 불안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말씀드린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라. 괴물을 응원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라. 나는 지금 무엇에서 도망치고 있는가. 무엇을 사냥하고 있는가.